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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춘다
작성일 2018/09/16
분 류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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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장법사 위대한 대사문 역경 구마라집 = 영험설화,


삼장법사 위대한 대사문 역경 구마라집 - 영험설화,
진(晋)나라 사문 구마라집(鳩摩羅什)
진(晋)나라 장안(長安)의 구마라집은 한어(漢語)로 동수(童壽)이니 천축(天竺) 사람이다. 그 집은 대대로 나라의 재상을 지냈다. 그 조부 달다(達多)는 뜻이 크고 기개가 있어, 남의 구속을 받지 않았으며 나라에서 그 이름이 드날렸다. 라집의 아버지 구마라염(鳩摩羅琰)은 총명하고 법도가 있었다. 그는 정승 자리를 이어받게 되었으나 그것을 사양하고 출가하여 동으로 총령(嶺)을 넘어갔다. 구자국의 왕은 그가 영화를 다 버렸다는 말을 듣고는 매우 공경하고 사모하여, 친히 교외까지 나와 맞이하여 국사로 삼았다.

그 왕에게 여동생이 있어 나이 막 20이었는데, 재주 있고 명민하여 한 번
보면 반드시 그대로 하고 한 번 들으면 다 외웠다. 또 그 몸에 붉은 사마귀가 있어서, 으레 지혜 있는 아들을 낳게 되어 있었으므로, 여러 나라에서 그녀를 맞이하려 했으나 다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구마라염을 보자 마음에들어 이에 재촉하여 아내로 삼았다.

라집을 배자 아이가 배 안에 있는 동안 그 어머니는 슬기와 앎이 보통 때보다 곱절이었다. 작리사(鵲梨寺)에 명성과 덕이 있는 스님이 많고 또 도를 얻은 스님이 있다는 말을 듣고는 곧 왕족과 귀한 여자와 덕행을 갖춘 비구니와 함께 날마다 공양을 베풀고 재(齋)를 청하여 법을 들었다.

라집의 어머니는 갑자기 천축 말을 알아서, 어려운 질문을 받으면 반드시 그 깊은 이치를 다 알아냈으므로 모두들 감탄했다. 달마구사(達摩瞿沙)라는 아라한이 '이 여자는 반드시 지혜로운 아들을 배었을 것이다'라 생각하고, 그녀를 위해 사리불이 태에 있을 때의 일을 설명하였는데, 라집이 태어난 뒤에는 전에 할 줄 알던 말을 잊어버렸다. 얼마 있다가 라집의 어머니는 출가하려 했으나 그 남편이 허락하지 않았다. 드디어 다시 한 아들을 낳아 이름을 불사제
바(弗沙提婆)라 했다. 뒤에 그녀는 성을 나가 유람하다가 무덤 사이에 많은 해골이 어지러이 흩어져 있는 것을 보았다. 그리하여 괴로움의 근본을 깊이 생각하고 기어코 속세를 떠나려 했다. 머리 깎기를 맹세하고 음식을 먹지 않아, 엿새 째 밤에는 기력이 다 떨어져, 밤을 넘기기 어려울 것 같았으므로 이에 남편이 허락했다.

그러나 아직 머리를 깎지 못했으므로 음식을 먹지 않다가 사람을 시켜 머리를 깎고서야 비로소 음식을 먹고 다음날 아침에는 계를 받았다. 계속해서 선법(禪法)을 업으로 삼아 정진하면서 게으르지 않아 초과(初果)를 얻었다. 라집의 나이 7세 때에 함께 출가하여 스승에게 경을 배울 때 하루 천 게송을 외웠다. 한 게송이 32자이니 모두 3만 2천 자이다. 『비담론』을 다 외웠을 때 스승이 그 뜻을 가르치자 곧 스스로 다 통달하여 어떤 깊은 뜻이라도 다
통했다. 그 때 구자국 사람들이 그 어머니와 왕녀가 이양(利養)이 매우 많다 하였으므로 라집을 데리고 곧 피했다.

구마라집의 나이 아홉 살에 어머니를 따라 신두하(辛頭河)를 건너 계빈국(賓國)에 이르렀다. 이름난 덕을 지닌[名德] 법사(法師)인 반두달다(槃頭達多)를 만나니, 바로 계빈왕(賓王)의 사촌 아우이다.

깊고 순수하여 큰 기량(器量)이 있었다. 재주가 있고 총명한데다 아는 것이 넓어 당시의 독보적(獨步的)인 존재였다. 삼장(三藏)과 구부(九部)를 해박하게 익히지 않음이 없었다. 아침부터 낮까지는 손수 천 개의 게송(偈頌)을 쓰고, 낮부터 밤까지는 천 개의 게송을 외웠다. 이름이 여러 나라에 퍼져서 멀거나 가깝거나 그를 스승으로 섬겼다.

구마라집은 계빈국에 이르러 곧 그를 스승의 예로써 존숭하였다. 그에게서 『잡장(雜藏)』·『중아함경(中阿含經)』·『장아함경(長阿含經)』 4백만 글자를 배웠다. 반두달다(槃頭達多)가 매양 구마라집의 신통함과 빼어남을 칭찬하자, 마침내 명성이 왕에게까지 전해졌다. 왕은 즉시 구마라집을 궁중으로 초청하여, 외도(外道)의 논사(論師)들을 모아 놓고 서로 공격하여 힐난(詰難)하게 하였다.

논쟁이 처음 벌어질 때에, 외도(外道)들은 구마라집의 나이가 어리다고 깔보아 말투가 자못 불손(不遜)하였다. 구마라집이 틈을 타 기세를 꺾었다. 외도들이 기가 죽어 부끄러워 말을 못했다. 왕은 더욱 공경하고 특별히 대우하여, 날마다 말린 거위고기 한 쌍(雙), 멥쌀과 밀가루 각각 세 말[斗], 소() 여섯 되를 주었다. 이것은 외국(外國)에서는 상등(上等) 공양에 해당한다.

구마라집이 머물던 사찰의 주지(住持)도 이에 비구 다섯 명과 사미(沙彌) 열 명을 보냈다. 비로 쓸고 물 뿌리는 일을 맡겨, 구마라집의 제자같이 하게 하였다. 그를 존경하여 숭배함이 이와 같았다.

나이 열두 살이 되자 그의 어머니는 그를 이끌고 구자국(龜玆國)으로 다시 돌아왔다. 여러 나라에서 높은 벼슬로 그를 초빙하였다. 그러나 구마라집은 전혀 돌아보지 않았다. 당시 그의 어머니는 그를 데리고 월지국(月氏國)의

북쪽 산(山)에 이르렀다. 그 산에는 한 나한(羅漢)이 있었다.

나한은 구마라집을 보자 남달리 여겨 그의 어머니에게 말하였다.

“항상 이 사미(沙彌)를 지켜 보호해야만 한다. 나이 서른다섯 살이 될 때까지 계율을 깨뜨리지 않아야 한다. 그러면 불법(佛法)을 크게 일으키고 무수한 중생들을 제도하는 것이 우바굴다(優婆掘多)와 다름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계율을 온전히 지키지 못한다면 큰 일을 할 수 없을 것이다. 다만 재주가 밝고 슬기가 찌르는 법사(法師)가 될 뿐일 것이다.”

구마라집이 나아가 사륵국(沙勒國)에 이르러 부처님의 발우를 이마로 모셨다[頂戴]. 마음속으로 ‘발우의 형태는 굉장히 큰데 어찌 이리도 가벼울까?’라는 생각을 하자마자 무거워졌다. 감당할 수가 없어 소리도 지르지 못하고 곧 발우를 내려놓고 말았다.

어머니가 그 까닭을 물었다.

“어린 제 마음에 분별(分別)함이 있었습니다. 그 때문에 발우에 가벼움과 무거움이 깃들었을 따름입니다.”

마침내 사륵국에 일년 간 머물렀다. 그 해 겨울 아비담(阿毘曇)을 암송하였다. 십문품(十門品)과 수지품(修智品) 등 여러 품(品)에 대해 묻고 배운 것이 없었지만, 두루 그 절묘함을 통달하였다. 또 『육족론(六足論)』에 관한 모든 물음에 대해서도 막히거나 걸림이 없었다. 사륵국에 희견(喜見)이라는 삼장(三藏) 사문이 있었다. 그는 왕에게 말하였다.

“이 사미(沙彌)를 가벼이 여겨서는 안 됩니다. 왕께서는 이 사미를 청하여 최초로 설법의 문을 열도록 하셔야 합니다. 거기에는 두 가지 이익이 있습니다.

첫째, 온 나라 안의 사문들이 구마라집에게 미치지 못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여 힘써 공부하는 것을 보실 것입니다.

둘째, 구자국(龜玆國) 왕은 필시 ‘구마라집이 우리나라 출신(出身)인데, 저들이 구마라집을 존경한다는 것은 곧 우리나라를 존경하는 것이다’라고 생각하고, 반드시 와서 우호(友好)를 교환할 것입니다.”

왕은 곧 그것을 허락하였다. 즉시 큰 모임을 베풀었다. 구마라집을 청하여 높은 자리에 올라 『전법륜경(轉法輪經)』을 강설하도록 하였다. 과연 구자국


왕은 지위가 높은 사신을 파견하여 두터운 우호에 보답하였다.

구마라집은 설법하는 여가에 외도의 경전들을 탐색하였다. 『위타함다론(圍陀含多論, vedasastra)』을 잘 익혀서, 글을 짓고 묻고 답하는 따위의 일에 매우 밝았다. 또 사위타(四圍陀)의 전적들과 5명(明)의 여러 논(論)들을 널리 읽었다. 음양(陰陽)·성산(星算: 天文曆數)까지 모두 다 극진히 연구하여 길흉(吉凶)에도 미묘하게 통달하였다. 그의 예언은 부절(符節)을 합한 것과 같이 딱 들어맞았다.

성품이 소탈하고 활달하여 자잘한 법식에 구애되지 않으니, 수행자(修行者)들은 모두 이상하게 여겼다. 그러나 구마라집은 자연스런 마음으로 조금도 거리낌이 없었다.

당시 사거왕자(莎車王子)와 참군왕자(參軍王子), 형제 두 사람이 나라를 버리고 사문(沙門)이 되었다. 형은 자(字)를 수리야발타(須利耶跋陀)라 하고, 아우는 자를 수리야소마(須利耶蘇摩)라고 하였다.

수리야소마는 재주와 기량이 남보다 월등하게 뛰어났다. 오로지 대승(大乘)으로써 교화하였다. 그의 형과 여러 학자들이 모두 그를 스승으로 섬겼다. 구마라집도 역시 수리야소마를 존숭하고 받들었다. 가까이 하여 좋아함이 더욱 지극하였다. 수리야소마는 뒤에 구마라집을 위하여 『아뇩달경(阿達經)』을 설해 주었다.

구마라집은 스승에게서 “음(陰)·계(界)·제입(諸入)은 모두 공(空)하고 무상(無相)하다”는 설법을 들었다. 괴이쩍게 여겨 질문하였다.

“이 경에는 다시 무슨 뜻[義]이 있기에, 모든 현상을 있는 족족 모두 파괴해 버립니까?”

수리야소마는 답하였다.

“안(眼) 등의 모든 현상은 진실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구마라집은 이미 ‘안근(眼根)이 존재한다’고 집착하였다. 수리야소마는 ‘인과로써 이루어진 것일 뿐 실체는 없다’는 데에 의거하였다. 이 때문에 대승(大乘)과 소승(小乘)을 깊이 궁구하여 밝혀[硏], 서로 주고받는 문답이 오랜 시일 동안 계속되었다.

구마라집이 비로소 이치의 돌아감을 알고는 마침내 오로지 대승 경전을 힘써 공부하였다. 이에 탄식하였다.

“내가 옛날에 소승(小乘)을 배운 것은, 마치 어떤 사람이 황금을 알지 못한 채 놋쇠를 가지고 가장 훌륭한 것으로 여긴 것과 같구나.”

그러고는 대승에서 중요한 것들을 널리 구하여, 『중론(中論)』·『백론(百論)』 두 논과 『십이문론(十二門論)』 등을 외웠다.

얼마 후 어머니를 따라 나아가 온숙국(溫宿國)에 이르렀다. 바로 구자국의 북쪽 경계였다. 당시 온숙국에는 한 도사(道士)가 있었다. 신묘(神妙)한 말솜씨가 빼어나서 명성을 여러 나라에 떨쳤다.

그는 제 손으로 왕의 큰 북을 치면서 스스로 맹세하여 말하였다.

“논쟁으로 나를 이기는 자가 있으면 내 목을 잘라서 사죄하겠다.”

구마라집이 이른 뒤에 둘이 서로 다른 논쟁을 벌여 따졌다. 도사는 헷갈리고 얼이 빠져 불교에 머리를 조아리고 귀의(歸依)하였다. 이리하여 구마라집의 명성이 파미르 고원 동쪽에 가득하였다. 명예가 황하[중국] 밖에서는 널리 퍼졌다.

구자국왕은 몸소 온숙국까지 가서 구마라집을 맞이하여 구자국으로 돌아왔다. 널리 여러 경들을 강설하니, 사방의 먼 지방에서 존숭하고 우러러 아무도 그를 대항할 자가 없었다.

그 당시 한 왕녀(王女)가 비구니가 되었다. 자(字)를 아갈야말제(阿軻耶末帝)라고 한다. 그 비구니는 많은 경전들을 널리 보았다. 특히 선(禪)의 크나큰 요체를 깊이 알았으며, 이미 2과(果: 사다함과)를 증득했다고 하였다. 그 비구니는 구마라집의 법문을 듣고 뛸 듯이 기뻐하였다. 이에 다시 큰 모임을 마련하고, 대승 경전의 심오한 이치를 열어줄 것을 청하였다.

구마라집은 이 법회에서 모든 현상이 다 공하여 내가 없음[皆空無我]을 미루어 변론하였다. 음(陰)이나 계(界)는 임시 빌려 쓴 이름이지 실제가 아님[假名非實]을 분별하였다. 당시 모인 청중들이 지나간 일을 돌이켜 생각하여 슬프게 느끼며, 깨달음이 뒤늦었음을 한탄해 마지않았다.

구라마집의 나이 스무 살에 이르자 왕궁에서 구족계(具足戒)를 받고, 비마라차(卑摩羅叉)에게 『십송률(十誦律)』을 배웠다.

얼마 후 구마라집의 어머니는 구자국을 하직하고 천축국(天竺國)으로 갔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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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백상의 인연

춘다 1204 육아백상의 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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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명보살전

1221 마명보살전
마명보살전(馬鳴菩薩傳)    (後秦) 삼장(三藏) 구마라집(鳩摩羅什) 한역 최철환 번역    대사(大師)는 이름이 마명보살이고, 장로(長老) 협(脇)의 제자이다.언제인가 장로 협이 부처님 법을 걱정하며 삼매에 들어가 누가 출가해서 도(道)의 교화를 널리 선양하고 중생들을 깨닫게 할 임무를 감당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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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수밀다의 전생, 황금 원숭이의 전생

1515 바수밀다의 전생, 황금 원숭이의 전생
   대중 가운데 이름이 바수밀다(婆須密多)라는 한 보살 비구가 있었는데, 대숲 동산[竹園] 사이 푸른 나무 위아래를 오르내리면서 원숭이처럼 소리를 내고, 혹은 3령(鈴)을 가지고 나라(那羅:배우, 광대) 놀이를 하였다. 이 때 여러 장자와 길을 가던 사람들이 다투어 모여들어 구경을 하였는데, 여러 사람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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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귀의 전생 죄업을 말씀하시다

순둥이7e 1183 아귀의 전생 죄업을 말씀하시다
어느 한 아귀가 말했다."언제나 두 개의 이글거리는 쇠수레 바퀴가 저의 두 겨드랑이 아래 있으면서 차츰차츰 몸을 태워 들어갑니다. 무슨 일 때문에 그러합니까?"목련이 대답하였다."너는 전세에 여러 스님들을 위하여 떡을 만들었는데 도둑의 마음으로 두 번을 가져다 두 겨드랑이 밑에 끼웠었느니라."다시 어느 한 아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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