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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경강의

벽공스님 번역, 강의한 금강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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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벽공
작성일 2003/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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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경:9. 하나의 상도 상이 아니다 - 금강경강의, 벽공스님번역강의, 불교,


 2001, 6월 25일 
 

(성문사과,수다원,사다함,아나함,아라한,무쟁삼매,)  

 

⊙금강경: 9, 하나의 상도 상이 아니다. 
 

원문

一相無相分, 第九. 
일상무상분, 제구. 

 

須菩提 於意云何 須陀洹 能作是念 我得 須陀洹果不 
수보리 어의운하 수다원 능작시념 아득 수다원과부 

須菩提言 不也 世尊 何以故 須陀洹 名爲入流 而無所 
수보리언 불야 세존 하이고 수다원 명위입류 이무소 

入 不入 色聲香味觸法 是名須陀洹 須菩提 於意云何 
입 불입 색성향미촉법 시명수다원 수보리 어의운하 

斯陀含 能作是念 我得斯陀含果不 須菩提言 不也 世 
사다함 능작시념 아득사다함과부 수보리언 불야 세 

尊 何以故 斯陀含 名 一往來 而實無往來 是名斯陀含 
존 하이고 사다함 명 일왕래 이실무왕래 시명사다함 

須菩提 於意云何 阿那含 能作是念 我得阿那含果不 
수보리 어의운하 아나함 능작시념 아득아나함과부 

須菩提言 不也 世尊 何以故 阿那含 名爲不來 而實無 
수보리언 불야 세존 하이고 아나함 명위불래 이실무 

不來 是故 名阿那含 須菩提 於意云何 阿羅漢 能作是 
불래 시고 명아나함 수보리 어의운하 아라한 능작시 

念 我得阿羅漢道不 須菩提言 不也 世尊 何以故 實無 
념 아득아라한도부 수보리언 불야 세존 하이고 실무 

有法 名阿羅漢 世尊 若阿羅漢 作是念 我得阿羅漢道 
유법 명아라한 세존 약아라한 작시념 아득아라한도 

卽爲着 我人衆生壽者 世尊佛說 我得無諍三昧 人中 
즉위착 아인중생수자 세존불설 아득무쟁삼매 인중 

最爲第一 是第一離欲阿羅漢 世尊 我不作是念 我是 
최위제일 시제일이욕아라한 세존 아부작시념 아시 

離欲阿羅漢 世尊 我若作是念 我得阿羅漢道 世尊 則 
이욕아라한 세존 아약작시념 아득아라한도 세존 즉 

不說 須菩提 是樂阿蘭那行者 以須菩提 實無所行 而 
불설 수보리 시요아란나행자 이수보리 실무소행 이 

名 須菩提 是樂阿蘭那行 
명 수보리 시요아란나행 


번역

"수보리야, 어떻게 생각하느냐. 수다원이 능히 이런 생각을 하기를, '내가 수다원과를 얻었다.' 하겠느냐?" 
수보리가 말씀드렸다. 
"아니 옵니다. 세존이시여, 무슨 까닭인가 하면 수다원을 이름 하여 입류(入流)라 하지만 들어간 바가 없아옵니다. 색(色)·성(聲)·향(香)·미(味)·촉(觸)·법(法)에도 들어가지 않아서 이름 하여 수다원이라 하나이다." 
"수보리야, 어떻게 생각하느냐, 사다함이 능히 이런 생각을 하기를, '내가 사다함과를 얻었다.' 하겠느냐?" 
수보리가 말씀드렸다. "아니 옵니다. 세존이시여, 사다함은 한번 왕래한다. 하지만 실로 왕래함이 없기에 이름 하여 사다함이라 하나이다." 
"수보리야, 어떻게 생각하느냐. 아나함이 능히 이런 생각을 하기를, '내가 아나함과를 얻었다.' 하겠느냐?" 
수보리가 말씀드렸다. "아니 옵니다. 세존이시여, 무슨 까닭인가 하면 아나함은 불래(不來)라 하지만 실로 오지 아니함이 없기에 이름 하여 아나함이라 하나이다." 
"수보리야, 어떻게 생각하느냐. '아라한이 능히 이런 생각을 하기를, '내가 아라한의 도를 얻었다,' 하겠느냐?" 
수보리가 말씀드렸다. "아니 옵니다. 세존이시여, 무슨 까닭인가 하면 실로 아라한이라 이름 할 법이라는 것이 없나이다. 세존이시여, 만약 아라한이 생각하기를 '내가 아라한의 도를 얻었노라. '한다면 이는 곧 아상·인상·중 생상·수자상에 집착하는 것이옵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제가 무쟁삼매(無諍三昧)를 얻은 사람 중에 가장 으뜸이라고 하시었습니다. 욕심을 여읜 으뜸가는 아라한이라 인정하심이나, 세존이시어, 저는 저 자신이 욕심을 여읜 아라한이라고 생각하지 않나이다. 
세존이시여, 제가 만약 생각하기를, '내가 아라한 도를 얻었다.' 한다면 세존께서는, 곧 '수보리는 아란야 행을 즐기는 사람이다. 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셨을 것이옵니다. 
수보리는 실로 행한 바가 없으매, '수보리가 아란야 행을 즐긴다고' 이름 하시었나이다." 

 

강설 

 

성문사과) 

 

수다원이란 성문사과의 하나입니다. 성문사과란 수다원, 사다함, 아나함, 그리고 아라한을 일컬어서 성문사과라고 합니다. 일종의 수행 경지라고 해도 되고 수행 단계를 구분하는 용어이기도 합니다. 이 밖에도 연각, 독각, 벽지불, 여러 단계로 세분하기도 합니다만, 대체로 소승에서는 크게 네 가지로 구분하는 것이 통례였습니다. 
이는 부처님 제세시에 일반적으로 통용되었든 수행의 과위입니다.

(대승이 성립되고 나서는 화엄경에서처럼 더 세분해서 52위로 나누기도 하였습니다. 오십위란 십신(十信) 십주(十住) 십행(十行) 십회향(十廻向) 십지(十地)에다 등각(等覺) 묘각(妙覺)을 더해서 52위가 되는 것입니다.) 

그럼 수다원이란 무엇일까요. 수다원은 일명 입류(入流)라고 합니다. 천이백 아라한들 같이 부처님을 뵙자마자 혹은 얼마 안 가서 바로 아라한을 이룬 분들도 있었고, 아나함이나 사다함을 이룬 분들도 있었지만, 일반적으로는 가장 먼저 수다원을 성취하게 되는 것입니다. 
수다원은 일단 선과 악, 있다 없다 등에 얽매인 집착을 비로소 벗어 던지고 청정한 성인의 대열에 합류하는 첫 단계 과위입니다. 

근본의 욕심이라고 할 재물이나 명예, 욕망, 탐욕심과 싫어하고 짜증 내며 성내는 마음, 그리고 무지와 어리석음, 또 드세우는 교만, 밝지 못함으로 인한 의심과 망설임을 모두 털어 버리게 됨으로써 이제야 법을 생활화하고 해탈의 긴 여정에 들어가는 현자를 일컫는 말입니다. 
수다원과는 시작이라는 뜻이 많이 들어 있는 것 같습니다. 세간의 욕망과 어리석음, 전도된 망상을 여의고 새로운 길에 들어섰다는 의미가 수다원이라 보시면 되겠습니다.

 

수다원이 왜, 들어감이 없다. 하는가) 

본래 탐진치가 없습을 확인하고 거기서 놓아 버리는 것이지, 따로 탐진치나 다른 삿된 마음을 없애고 수다원을 얻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며, 그래서 당연히 수다원을 얻었다고 하는 생각에 잠겨 있지도 않는 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분명한 가르침과 이치가 있기 때문에 도를 얻었다는 망상에서 벗어나고 초월할 수가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만약 얻었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면 그 자체가 아직 어리석은 겁니다. 꿈속 경계에 들어 있으면서 도를 논하는 것이어서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다함) 

"수보리야, 어떻게 생각하느냐. 사다함이 능히 이런 생각을 하기를, '내가 사다함과를 얻었다.' 하겠느냐?" 수부리가 말씀드렸다. "아니 옵니다. 세존이시여, 사다함은 한번 왕래한다. 하지만 실로 왕래함이 없기에 이름 하여 사다함이라 하나이다." 

사다함은 수다원의 한 단계 위로 번뇌 망상을 없앴다고는 하지만, 속세의 깊은 인연과 탐진치가 아직은 미세하게 남아 있어서, 다시 한번 인간계에 태어나서 수행을 한 다음에 미세한 번뇌를 끊기 때문에 일 왕래라 하는 것입니다.

수다원과 성취 이전에 여러 생의 윤회를 거듭 했고 수다원 과위를 얻고서도 인간계에 거듭 몸을 받으면서 깊은 정진으로 사다함을 성취한 것입니다. 사다함은 한 번만 인간계에 오면 나머지 미세한 번뇌를 끊어 버린다. 하지만 끊을 바 번뇌도 없고 오고 가는 바가 없기에 사다함을 얻었다 함도 맞지 않는 말이며, 오히려 진실로 그 바탕이 왕래함이 없어서 오히려 사다함이라 한다고 역설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니함) 

"수보리야, 어떻게 생각을 하느냐. 아나함이 능히 이런 생각을 하기를, '내가 아나함과를 얻었다.' 하겠느냐?" 수보리가 말씀드렸다. "아니 옵니다. 세존이시여, 무슨 까닭인가 하면 아나함은 불래(不來)라. 하지만, 실로 오지 아니함이 없기에 이름 하여 아나함이라 하나이다." 

아나함이란 불래라 합니다. 불래란 오지 않는다는 말인데 아나함 과위를 얻으면 다시는 인간계에 태어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다함을 성취한 수행자가 다시 한번 인간에 와서 마지막 미세한 번뇌를 끊고 아나함을 성취하게 되는데, 다음에는 천상의 색계에 태어난다. 합니다. 
그러나 극히 미세한 번뇌가 사실은 아직은 남아 있어서 크게 자유롭지는 못하고 그 이상의 경계를 초월하지는 못한다는 것입니다. 
아나함은 다시 때가 되면 스스로 살펴서 아직 극히 미세한 번뇌가 남아 있음을 알아차리고 뒤에 다시 더 수행해서 아라한 향을 이루고, 나아가 아라한과를 얻는다는 것입니다.

아나함이 인간계에 다시는 오지 않는 다 하지만, 그것은 완전히 인간의 업을 이루는 탐진치 경계를 초월했기에 그런 것입니다. 그래서 욕심과 업 따라서 인간의 몸은 받지는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원력이나 특별한 인연사로는 다시 인간에 올 수가 있는 것입니다. 
자신의 결정에 따라서 몸을 받는 능동형입니다. 
인간계에 몸을 다시는 받지 않는다는 말은? 인간의 업에 의해서는 몸을 받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아라한) 

"수보리야, 어떻게 생각을 하느냐. '아라한이 능히 이런 생각을 하기를, '내가 아라한의 도를 얻었다,' 하겠느냐?" 
수보리가 말씀드렸다.
"아니 옵니다. 세존이시여, 무슨 까닭인가 하면 실로 아라한이라 이름 할 법이라는 것이 없나이다. 세존이시여, 만약 아라한이 생각하기를 '내가 아라한의 도를 얻었노라. '한다면 이는 곧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에 집착하는 것이옵니다." 

아라한은 능히 천상과 인간의 공양을 받을 만하다 해서 응공(應共)이라 하기도 합니다. 오고 감이 없는 둘이 아닌 적멸지에 안주를 해서 다시는 윤회에 들지 않는다는 성문사과의 마지막 경계입니다. 이미 선악을 초월하고 다툼이 끊어져서 무쟁(無爭)이라고도 합니다. 
그리고 더는 배울 것이 없다 해서 무학(無學)이라고도 합니다. 
경에서는 아라한은 깨달은 후 이만 겁이 지난 후에 성불한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아라한이라 함은 정말 얻고 잃음이 없어서 아라한이라고 하지 무엇인가 얻은 게 있다면 아라한이라고 하지 못하게 됩니다.

아라한은 소승에서는 부처님 다음으로 최고의 경지로 봅니다. 그렇지만 대승권에서는 보살사상을 아라한보다 위로 보지요. 그렇지만 그렇게 구분하는 건 옳지 않고, 모두 부처님의 광대한 법을 실천하고 나타내는 각각의 경계라고 보아야 마땅합니다. 

아라한이 은근히 속으로 생각을 하기를, '내가 아라한 도를 얻었다. 하고' 생각을 하지 않겠느냐고 물으시는 부처님의 질문에 수보리존자는 그렇지 않습니다. 하고 대답을 하는 것입니다.
'밖으로 말하진 않아도 자기도 모르게 나는 아라한의 도를 얻었다고 생각을 할 수가 있지 않을까요!' 
실로 자타가 아라한이라고 인정을 하고 증명을 받은 바가 있기에 말입니다. 
그러나 진정한 아라한은 잠시라도 '나는 아라한이다.' 하고 마음에 두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라한의 경계라는 것이 본래 모양이 없기 때문입니다. 
물론 깨달음 자체가 없을 수야 없지만, 엄밀히 말해서 어떤 경계를 얻은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일체의 경계와 결박을 없음을 확인했는데 거기에 또 어떤 경계가 있어 아라한의 경계라고 선을 그어 놓았겠습니까? 그렇지만 아라한을 이룬 그 무엇이 없고 허망하다는 이야기는 절대 아닙니다. 절실하게 성취함이 분명하기는 하지만 어떠한 모습이나 경계를 떠난, 태고로부터 변함없는 자신을 확인했을 뿐입니다

 

무쟁삼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제가 무쟁삼매(無諍三昧)를 얻은 사람 중에 가장 으뜸이라 하시었습니다. 욕심을 여읜 으뜸가는 아라한이라 인정하심이나, 세존이시어 저는 저 자신이 욕심을 여읜 아라한이라고 생각하지 않나이다. 세존이시여, 제가 만약 이런 생각하기를 '내가 알아 한 도를 얻었다.' 한다면 세존께서는, 곧 '수보리가 아란야 행을 즐기는 사람이다. 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수보리는 실로 행한 바가 없으매, '수보리가 아란야 행을 즐긴다. 고' 이름 하시나이다."

삼매란 말은 경전에 정말 많이 나옵니다.  그리고 삼매의 이름도 너무나 다양합니다. 깨달음이란 말도 여러 가지로 쓰일 수가 있기는 합니다. 어떤 작은 지식을 얻거나 아이디어가 떠올라도 깨달았다고 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수행문에서도 깨달았다고 하는 깊이와 종류가 서로 다르고 말하는 바가 다릅니다. 
무엇이 진정 지고의 깨달음인지 알기는 쉬운 일이 아니지만 다함이 없는 깨달음이란 여러 가지로 쓰일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삼매란 말은 수많은 변화를 보입니다. 왜, 그럴까요. 삼매는 어느 한 경계에 머물러 있기 때문입니다. 
흔히 조사선에서 말하는 선과는 다른 것입니다. 
중생들의 감각 경계는 너무도 다양합니다. 그와 같이 수많은 다른 세계의 감각을 삼매를 통해서 느끼고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양은 다양할 수밖에 없습니다. 온종일 말을 안 하고 시간이 간 줄도 모르면서 종일 앉아 있는 삼매도 있을 것이고 다른 세상의 정신을 같이 공유하는 삼매도 있을 것입니다. 이처럼 헤아릴 수 없는 경계와 삼매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수보리는 아라한과를 얻고 일체의 번뇌 망상과 의심, 그리고 욕심이 사라져서 너와 나도 없는 청정함을 바탕으로 삼기 있기 때문에, 옳다 그르다. 가 없습니다. 설령 온종일 말을 할지라도 한 생각 한 느낌도 다툼이 없습니다.

그 깊이가 남과 비교해서 단연 으뜸이었기 때문에 수보리는 무쟁삼매가 제일이라고 부처님이 칭찬하셨던 것입니다. 정말 자신이 욕심을 영원히 여읜 아라한이기는 하지만, 자신은 한 생각도 스스로 번뇌를 여읜 아라한이라고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아라한이지만 아라한인지도 모르며 깨달음도 얻음도 다 놔 버린 것입니다. 

생각의 경계란 참으로 미묘하고 다양해서 재물욕이 없어졌나 하면 어느덧 명예욕의 포로가 되어 있고 세상도 인연도 명예도 다 초월했는가 했으나, 도다 수행이다. 하는 것에 마음을 뺏겨서 온종일 그 타령을 하느라고 시간이 다 가는 것입니다. 
마음 깊이 참으로 도라는 글자나 행, 그리고 얻었다는 것까지도 쉬어 져야 할 것인데 뜻밖에 버리기가 참 어렵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무엇인가 돌아가면서 붙들고 있는 것이 중생 아니겠습니까? 
만약 아라한 도를 얻었다고 생각을 하고 있다면 부처님이 결코 수보리에게 아란야 행을 즐기는 사람이라고 하지 않았으리라는 것입니다. 

아란야 행이란 한가롭고 고요함을 벗으로 삼는 것을 일러, 아란야 행이라 합니다. 또 아란야는 수행하기 좋은 번거롭지 않은 조용한 장소를 가리켜 아란야라고 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수보리존자는 밝고 청정하게 번뇌 없는 행을 즐기고 있기 때문에 부처님이 칭찬하시는 것입니다. 
"수보리는 항상 아란야 행을 한다고." 

지금까지 성문사과에 대해 설명을 했는데요. '나는 얻은 바가 없다. 하고' 겸손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이지 마세요. 성문사과의 바탕 경계를 말씀하시는 것이지, 평소에 겸손하고 자신을 낮추라는 그런 차원의 말씀이 아닙니다. 
예로, 부처님께서 나는 성불했다. 과를 얻었다. 공개적으로 밝힙니다. 그럼 부처님이 교만해서 그런가요? 그건 아닙니다. 중생의 이목을 모아 법을 펴시기 위해서 그런 것입니다. 
위의 모든 말씀은 내면의 경계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수행 중 마장) 

얻으려고 하거나, '내가 무엇을 얻었다. 하고' 크게 집착하면 바로 마장이 됩니다.
잠시 마장이 무엇인지도 살펴보고 지나갈까 합니다. 
능엄경의 오십삼마, 기타 각종 경전과 그리고 조사어록에 마장에 대한 말씀들이 많이 나옵니다. 마장이 나타나는 근본성질과 대처 방법들이 다양하게 제시되고 있이요. 
무엇이 수행이며 바른길인지 친절히 인도하며 배려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깊은 배려는 다른 종교에서는 찾아보기 어렵지요. 

인도의 힌두교 수행법이나 중국 도교의 수행법이 나름대로 오래된 전통과 깊이를 가지고 있지만 밝고 밝은 정사의 배려가 거의 없다는 것입니다. 특히나 수행과는 거리가 먼 서양의 종교들은 구분 자체를 몰라요. 
아무튼, 마장이 무엇인지 어떻게 대처를 할 것인지 아무리 안다고 해도 주변에 눈 밝은 스승이 없다면 어려울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순간은 자기의 보는 바가 옳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지나치면 정신적인 환상과 판단의 이상이 옵니다. 
그러나 당사자는 그렇다고 느낄 수가 없어요. 자신이 보기엔 실제로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혼자서는 수행할 수가 없다고 말을 하는 것입니다. 
좋은 사공이 없으면 배가 항해를 하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지만 마장이라는 말이 꼭 안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정진하는 가운데 어느 정도는 필연적으로 겪어야 하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왜 안 좋다고 말하는가? 과정을 잘못 인식을 하고 대단한 경지라도 되는 양, 빠져드는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눈 밝은 스승이 필요한 것입니다

결국 수행정진을 올바른 마음가짐으로 하는 분들은 자연스럽게 마장을 헤쳐 나가게 되어 있기 때문에 큰 걱정을 안해도 될 일입니다. 해 보지도 않고 지레 겁부터 내면 안될 것입니다. 호사다마라고 좋은 일이 있으려면 약간의 번거로움이 왜 없겠습니까? 
옳게 정진을 하는 사람들이라도 근본이 확연하기 전에는 경계가 수시로 바뀌고 업식이 뒤집히면 여러 가지 마음의 변화를 수반하게 되는 것입니다. 특히 열심히 하게 되면 현재 상태를 유지하는 정신이 힘을 잃게 되기도 합니다. 
천성이 자비로운 사람은 주체없이 남이 가엽게 보이기도 하고 슬퍼 지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평소에 자존심이 강한 사람은 아만심이 크게 일어나서 더 교만 해지기도 합니다. 

그리고 수행과는 상관없이 몸의 상태가 안 좋은 분들은 신경계의 교란으로 혼란이 옵니다. 
이것은 수행하는 가운데 오는 마장과는 성격이 다르지요. 마장이 오면 어떻게 대처를 할까? 
이때는 몸과 마음을 안정시키면서 해 오던 수행법을 그만 둬 버리면 됩니다. 그렇게 편하게 놔두면 혼란한 신경계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게 되요. 
수행을 계속하고 싶다면 반드시 이때는 눈밝은 스승의 지도를 받아야 합니다. 

그나마 불교의 정통 수행자들은 어느 정도는 조절할 수가 있는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런 구분법이 없는 다른 종교에서는 마장에 사로 잡혀 이상해진 사람들을 성자라고 떠 받들기도 합니다. 
그것도 수행중에 오는 마장도 아니고 절대자에 대한 집착과 망상에서 오는 마장이 많고 몸과 신경계가 부실해서 오는 이상 증상을 가지고 어리석게 무슨 큰 점지라도 받은 줄 알고 떠 받듭니다.

 

소승과 대승)

아라한을 대승권에서는 혼자만 닦고 성불하려는 소승으로 매도를 하나, 그것은 옳지 않은 것입니다. 
아라한의 대명사인, 부처님의 십대 제자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아라한들의 행적을 살펴보면 그렇게 가볍게 말을 할 수가 없게 되어 있습니다. 
그분들은 참으로 대승의 보살 사상을 실천하였습니다. 후대의 어느 성자들보다도 더 위신력이 있었으며 희생적이었습니다. 대자대비의 정신을 아낌없이 실천했으며 법을 전파하고 수호하는 위력과 능력을 두루 갖추고 있었습니다. 

대승권에서 말로는 보살을 논하나! 실로 행이나 실천 면에서 그분들의 근처에도 미치지 못한 바가 적지 않았습니다. 그 당시 아라한은 절대적인 깊은 이치를 깨달았을 뿐만 아니라 세간에서 실천으로 위엄을 보여 주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단순하게 행동과 사상으로 우열을 논하는 건 의미가 없고, 논한다면 내면을 논해야겠지요.

 

 주)

 是第一離欲阿羅漢을 "욕심을 떠난 으뜸가는 아라한이라 인정 하심이나"로 역하였다. 앞의 嘶자는 옳다 인정하다. 의미로 쓰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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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강의. 불교명상수련원(마하수련원) 벽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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