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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경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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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경강의, - 금강경강의,
작성자 벽공
작성일 2003/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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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경:제6. 바른 믿음은 희유하다 = 법문,어록,경전강의,


금강경:제6. 바른 믿음은 희유하다 - 금강경강의,


2001, 6월 4일

 

(후오백세,정법시대,말법시대,법상,비법상,) 

 

⊙금강경: 제6, 바른 믿음은 희유하다.

 

원문

正信希有分, 第六.
정신희유분, 제육.

須菩提 白佛言 世尊 頗有衆生 得聞如是言說章句 生
수보리 백불언 세존 파유중생 득문여시언설장구 생

實信不 佛告 須菩提 莫作是說 如來滅後 後五百歲 有
실신부 불고 수보리 막작시설 여래멸후 후오백세 유

持戒修福者 於此章句 能生信心 以此爲實 當知 是人
지계수복자 어차장구 능생신심 이차위실 당지 시인

不於一佛二佛三四五佛 而種善根 已於無量 千萬佛所
불어일불이불삼사오불 이종선근 이어무량 천만불소

種諸善根 聞是章句 乃至一念 生淨信者 須菩提 如來
종제선근 문시장구 내지일념 생정신자 수보리 여래

悉知悉見 是諸衆生 得如是 無量福德 何以故 是諸衆
실지실견 시제중생 득여시 무량복덕 하이고 시제중

生 無復 我相人相 衆生相 壽者相 無法相 亦無非法相
생 무부 아상인상 중생상 수자상 무법상 역무비법상

何以故 是諸衆生 若心取相 則爲着 我人衆生壽者 若
하이고 시제중생 약심취상 즉위착 아인중생수자 약

取法相 則着 我人衆生壽者 何以故 若取非法相 卽着
취법상 즉착 아인중생수자 하이고 약취비법상 즉착

我人衆生壽者 是故 不應取法 不應取非法 以是義故
아인중생수자 시고 불응취법 불응취비법 이시의고

如來常說 汝等比丘 知我說法 如筏喩者 法尙應捨 何況非法
여래상설 여등비구 지아설법 여벌유자 법상응사 하황비법

 

번역

"수보리가 부처님께 사뢰었다. 세존이시여, 자못 어떤 중생이 이러한 말씀과 글귀를 듣고서 진실로 믿음을 내겠나이까?"
"부처님께서 이르시되. '수보리야,' 그런 말을 하지 마라. 여래가 멸도(滅道)한 뒤 후 오백년에도 계를 지키고 복을 닦는 자가 있어서 이 말과 글귀에 능히 믿음을 내리니 이로써 실답다. 할 것이니라.
마땅히 알아라. 이런 사람은 한 부처님이나 두 부처님, 셋·넷·다섯 부처님께 선근(善根)을 심었을 뿐 아니라, 이미 한량없는 천만 부처님 처소에서 온갖 선근을 심었으므로 이 말이나 글귀를 듣고서 바로 한 생각에 청정한 믿음을 내는 것이니라.
'수보리야,' 여래는 다 알고 다 보나니, 이 모든 중생은 이처럼 한량없는 복덕을 얻느니라. 어찌 된 연고인가, 이 모든 중생은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이 다시 없으며 법상(法相)도 없고 법 아니라는 상도 또한 없느니라.
무슨 까닭인가, 이 모든 중생이 만일 마음에 상을 취하면, 이것은 곧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에 집착하는 것이 되나니. 무슨 까닭인가, 만일 법상을 취하더라도 바로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에 집착하게 되는 것이며, 법이 아니라는 상을 취하더라도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에 집착하는 것이 되느니라.
이러한 까닭으로 응당 법도 취하지 말고, 응당 법 아님도 취하지 말아야 하느니라.
그러므로 여래가 항상 말하기를 너희 비구들은 나의 설법을, '뗏목과 같음을 알아라. 하고' 비유하였느니라." "오히려 법도 응당 버려야 하거늘 하물며 법 아님이야. "

 

강설

"수부리가 부처님께 사뢰었다. 세존이시여, 자못 어떤 중생이 이러한 말씀과 글귀를 듣고서 진실로 믿음을 내겠나이까?"
부처님께서 이르시되.
"수보리야, 그런 말을 하지 마라. 여래가 멸도(滅道)한 뒤 후 오백년에도 계를 지키고 복을 닦는 자가 있어, 이 말과 글귀에 능히 믿음을 내리니 이로써 실답다 할 것이니라."

부처님이 계시고 수많은 성스러운 수행자들과 법다운 신자들이 가득 메운 시절에는, 모임이 순수하고 모두 마음이 열리기에 부처님의 깊은 가르침을 이해하는데 별 어려움이 없었을 것입니다. 더구나 수보리존자같은 대장부는 부처님의 향기로운 가르침이 바로 온몸에 밸 것입니다.
그러나 세월이 더 흐르고 인연이 점점 박해지는 시대에는 바른 것을 바르게 보지 않고 욕심으로 삿된 법을 쫓아다니게 될 것 아니겠습니까.
이런 안타까운 시절에도 과연 밝은 이가 있어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믿고 따를 것인지 의문을 가지는 것입니다. 또 그렇게 질문을 드려서 다시 한번 부처님의 상세한 가르침을 들으려는 것입니다. 이에 부처님께서 화답하시니, '그런 말을 하지 마라. 후 오백세에도 진실로 믿는 자들이 있을 것이다.' 하시는 것입니다.

 

후 오백세.)

부처님이 인연의 몸을 버리시고 멸도하신 후에, 바로 오는 오백 년간을 정법의 시대라고 합니다. 이때는 바른 가르침도 있고 수행과 깨달음도 온전하여서 정법의 시대라고 합니다. 그 후 다시 오백 년간은 상법시대라고 해요. 이때도 법과 행이 살아있으나 정진의 힘이 점차 약해져서 깨닫기 어려워진다는 것입니다.
다시 상법시대가 지나고 나면, 진정한 행도 깨달음도 없다고 해서 말법시대라 합니다. 이렇게 정법시대 오백 년간을 지난 뒤를 후 오백세라 하는 것입니다. '이런 탁하고 둔한 근기의 세상에도 믿는 중생들이 있겠습니까? 하는' 질문에 부처님은 그렇다고 대답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부처님이 가신 후에도 오백 년간은 대를 이어서 큰 깨달음을 얻은 분들이 줄을 이었으며 그 능력과 거룩한 행은 만 중생의 사표가 되었습니다. 또 의지처가 되었던 것입니다.
이 시절에는 세상의 모든 의문은 절에서 해결되었습니다.
정치 경제 문화 온갖 가르침은 절에서부터 나왔던 것입니다.
우리나라도 불교가 극치를 이룬 통일신라에서는 그랬습니다. 비록 경에서 말한 정법의 시대를 지나서 불교가 이 땅에 전파가 되었지만 훌륭한 고승들이 연이어 나왔으며 뛰어난 재능과 지혜로 만백성의 스승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형상의 교는 무상한 세월이 흐르면서 위태위태 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바른 법과 깨달음은 고사하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보존하고 전하기도 급급할 때가 많았던 것입니다.

조선 시대와 같은 그런 암담한 시절에는 부처님의 근본 가르침의 뜻이 무엇인지가 문제가 아니고, 명맥을 이어 가기도 힘겨웠습니다.
그저 복이나 빌고 부처님의 기피나 바라는 기복에 매달리지 않을 수가 없었어요. 다행히 요즘은 불꽃처럼 부처님의 법을 다시 배우고 수행 정진을 하는 풍토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정작 가르치는 스승도 부족하고 참다운 순수한 정진 자도 크게 많지는 않다는 것이 현실입니다.

 

말법 시대)

말법시대라는 말을 여기서 다시 한번 의미를 새겨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혹자는 말하기를 "부처님도 말씀하셨지만, 지금은 말법 시대이니 수행이니 정진이니 해 봐야 않된다. 그러니 우리는 기도나 하고 염불이나 할 수밖에는 없다." 이렇게 말을 하기도 합니다.
어떻게 보면 맞는 말 같기도 합니다. 그러나 맞지 않는 이야기입니다.

설령 그렇다고 해도 그럴수록 더욱 수행정진에 힘을 쏟아야 할 것 아니겠습니까? 기도도 열심히 하고 염불도 해야 되겠지만 모두 자기 공부가 되지 않는다면 결국 바른 성취는 기대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만약에 바른 공부를 하고 있다면 이미 염불과 기도를 같이 성취하는 것입니다. 오히려 염불과 기도는 더욱 운명과 업에 매달리게 하고 집착을 근본으로 삼게 하는 역기능이 있이요.
또 합리적이고 실다운 부처님 법을 연구하고 개척하는 자세를 막아 버리는 부작용이 있어요.

얻으려고 하고 바라기만 하는 습관이 들면, 평생 어리석어지고 실다운 능력이 생기지 않게 됩니다. 부처님께서도 "나에게 기도하고 빌고 얻어라." 하지지 않았습니다.
만약, 그렇게 생각한다면 법을 비방하고 부정하는 것입니다.

행운과 복은 자신의 짓는대로 다가올 뿐입니다.
부처님이 인색해서 복을 주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하늘도 복을 주거나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사주팔자가 딱 고정되어 있는 것도 아닌 것입니다.
복은 머무른바 없는 밝은 마음과 화합의 실천에서 오는 것이지. 일반적인 선과 악의 관점에서 오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복이 없다면 밝은 행과 마음을 쓰지 못했고 보시와 화합을 실천하지 못해서 그럴 뿐입니다.

기도뿐만 아니라 매사 남에게 의지하는 습관이 들면 생활 능력을 얻기가 어렵습니다. 그 마음에 어디 정법시대 말법시대가 그려져 있겠는가요. 그마저도 꿈이요 망상입니다. 마음이란 말법시대나 정법시대 사람이 차별이 있을 수가 없어요.

옛 부처님 당시에는 정신적인 삶을 살기에 좋았을 것입니다. 그래도 모양만 다를 뿐 우열은 크게 없다고 봅니다. 또 중생의 근본은 밝음이요 대자유입니다. 능력도 어떤 중생이든지 원래 대동소이해요.
따라서 시대가 다르다고 한들 근본바탕의 능력은 차이가 있지 않습니다. 시절에는 말법시대가 있겠지만, 마음의 근본에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과학적인 삶이든 정신적인 삶이든, 모두 한마음의 세계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차이가 난다면, 원력을 강하게 세우고 순수한 마음으로 스승을 찾고 몸을 던져서 지극하게 배우고 실천을 하느냐. 그렇지 못하느냐. 그런 차이가 난다면 날 것입니다.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자기 마음만 확고하다면 오히려 요즘 세상이 더 마음 닦기에 적합하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옆에 좋은 스승이 있고, 학인이 순수하다면 조건은 더 좋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세계가 한집안이고 곳곳에 스승이 없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정진을 할 수 있는 여건이 어느 때보다 우리에게 더 주어져 있습니다. 선택의 여지도 매우 넓습니다.
무엇보다도 마음이란 과거 현재 미래가 함께하며 둘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깨닫고 못 깨닫고는 달리 장애가 있다고 할 수가 없습니다.

혹자는, "그렇지만 수행 정진하는 분들이 많기는 한데 크게 깨치고 무언가 보여주는 사람이 없지 않느냐?" 하기도 합니다. 크게 깨쳤다는 것이 원래 표가 나는 것도 아니고, 못 깨쳤다 한들 그것 때문에 닦음을 포기할 수는 없는 것 아닐까요.

삿된 마음으로 특이한 이상한 견해로 도를 보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보여주는 것도 지금도 보여 줄 것은 다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하늘을 나르고 물속에 맘대로 들어가지 않습니까? 모든 사정이 이러한데도 지레 스스로 닦는 것을 포기하고 부처님이 몇 구절 이야기한 기도나 염불을 무슨 마지막 구원의 대상이라도 되는 양, 그것만 붙들고 늘어진다면 오히려 염불도 기도도 다른 데로 흐르기 쉬울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은 빛을 잃고 나중에 불교가 끊어지게 됩니다. 오직 인간사는 하늘의 뜻에 있는 것이 아니고 교육, 학습에 있습니다.
부처님의 뜻을 알고자 한다면 바로 큰 신심을 내고 머리를 들어서 스승을 찾고 깨달음의 뜻을 세워야 합니다. 그리고 생활 속에서 실천, 또 실천해야 합니다.

부처님께서는 이에 말법시대에도 선근이 있는 사람이 있어서 법상과 사상을 떠나서 법을 깨닫는 사람이 있다고 단언하시는 것입니다. "마땅히 알라. 이런 사람은 한 부처님이나 두 부처님, 셋·넷·다섯 부처님께 선근(善根)을 심었을 뿐 아니라 이미 한량없는 천만 부처님 처소에서 온갖 선근을 심었으므로 이 말이나 글귀를 듣고 바로 한 생각에 청정한 믿음을 내는 것이니라. '수보리야,' 여래는 다 알고 다 보나니, 이 모든 중생은 이처럼 한량없는 복덕을 얻느니라."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깨끗한 믿음을 일으킨 중생들은 한 부처님에게만 선근을 심은 것이 아니고 무량무수의 부처님 전에 인연을 짓고 선근을 심었으며 그 까닭에 말법시대에 부처님의 글귀를 대하더라도 곧 깊은 신심을 낸다는 말씀이십니다.

잠시라도 깨끗한 믿음을 내는 자는 부처님이 다 알고 다 보나니, 한량없는 무량복덕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을 하시고 계십니다. 그렇게 되는 것은 전생으로부터 이 세상에 이르기까지 범상치 않은 행을 이미 닦았을 것이고 천만 부처님 처소에 이르러 공덕을 지었을 것임에, 이 세상에 그런 신심을 발하는 것이며, 한 생각이 일체를 일으키는 관계로 그러한 인연은 곧, 무량한 큰 복을 받는다는 말씀이십니다.

왜냐하면, 그런 중생은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이 모두 없을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이 없다는 것은, 수행이라는 명패를 문 앞에 걸어 놓지 않아도 정진으로 장엄하고 있는 것이고 공덕의 보배로운 창고에 벌써 들어간 것입니다.
또한, 다함이 없는 여래의 처소에 같이 기거하는 것입니다. 그만한 공덕과 보배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생사의 기나 긴 터널을 벗어나는 길이요. 희로애락의 성난 파도에서 벗어나 안식처를 찾는 것이니 어찌 그 공덕의 크기를 말로 다할 수가 있겠습니까?

"어찌 된 연고인가, 이 모든 중생은 아상·인상·중생상·숫자상이 다시 없으며 법상(法相)도 없고 법 아니라는 상도 또한 없느니라. 무슨 까닭인가, 이 모든 중생이 만일 마음에 상을 취하면, 이것은 곧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에 집착하는 것이 되나니. 무슨 까닭인가, 만일 법상을 취하더라도 바로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에 집착하게 되는 것이며, 법이 아니라는 상을 취하더라도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에 집착하는 것이니라. 이러한 까닭으로 응당 법도 취하지 말고, 응당 법 아님도 취하지 말지니라." 

앞서 설명한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이 없는 공덕의 세계를 강조하고, 왜, 큰 공덕이 되고 복전이 되는지를 반복 설명하는 대목입니다.

 

법상 비법상)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 사상은 그렇다 하고, 법상과 비법상을 이야기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일체중생들은 저마다 유리할 대로 쫓아서 몸을 성장시켜 나갑니다. 그리고 부단히 적응하기도 합니다.
남을 해치는 나쁜 업을 가진 중생들도 많이 있기는 하지만 적어도 바른 법을 닦으려는 원을 세우고 공부를 하는 중생들이라면 당연지사 나쁜 일이라고 생각이 되면 멀리하려고 할 것입니다.
그리고 되도록 조건이 허락하는 선에서는 좋은 일을 행하고 남에게 인정을 받으면서 살고 싶을 것입니다. 대체로 착한 일을 즐긴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분들이 가장 떠나기 어려운 것이 있다면 좋은 일과 옳은 일에 대한 집착입니다. 옳고 그르고는 모두 본질이 허망한 것이지만 떠나기가 쉽지를 않아요. 때로는 지나쳐서 자기를 옭아매고 남과 투쟁을 하는 요소가 됩니다. 
옳다는 선은 다만 그 시대의 공감을 이루는 약속이며 살아온 세월의 관습일 진데 크게 착각을 해서 근본 진리라도 되는 양, 집착한다는 것입니다.
그 시대의 옳고 그름은 언제나 환경의 영향을 받으면서 구성원들의 업에 따라서 결정됩니다. 그리고 변천해 가는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세월을 두고 크게 흐르는 줄기가 형성될 뿐, 불변의 절대 원칙이 될 수는 없습니다.

굳이 원칙을 정해 보라면 남과 더불어 같이 화합하고 자유, 평등심으로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온당하다고 할까요.
사회 가치관과 법이라는 구조가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도 서로 얽히고 얽힌 인과의 원리와 윤회의 원리를 가르치고 더불어 살며 서로 돕고 베푸는 보살행을. 강조하셨든 것입니다.
이것은 생활 속에 가장 핵심적인 요소입니다.
그런데 왜, 이러한 간단한 일이 실천이 잘 안 될까요? 어린애도 실천하고 알 것 같은데. 그것은 저마다 옳다는 것에 집착해서 그런 것이 아닌가 합니다. 혹은 남보다 더 욕심을 부리고 군림하려는 탐욕 때문일 것입니다.

공부하는 분들이라면 기본적으로 탐욕심을 버리는 것이 당연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보다도 더 잘 안 되는 것이 있어요. 일반인들이 자기가 옳다는 것을 버리지 못하듯이 정진을 하는 분들도 내가 하는 공부가 바른 공부다. 이 법이 바른 정법이다. 저것은 바른 법이 아니다. 저 사람은 바른 사람이고 이 사람은 바르지 못한 사람이다. 이것은 정도다. 저것은 사도다. 위와 같이 법상에 집착하는 것일 것입니다.
법이 아니라고 배척을 하는 마음도 결국 한 무리입니다

 바른 수행 풍토가 아닐 때는 수행도 탐욕심과 체면과 자만심으로 실천 하므로 뱀이 물을 마시면 독을 이루듯이 남에게 과시하고 남을 굴복시키려고 공부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법상에 걸려서 헤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작금에도 수많은 사람이 수행 정진에 뜻을 두고 있고 세속에 사는 일반인들도 이미 활발하게 수행을 하고 있지만 그렇다는 말입니다.

소수지만 간혹 어떤 분들은 조금 공부가 된 듯하면 먼저 자기 공부를 과시하고 남의 공부를 부정하는 대열에 참여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수행의 목적이 전도되는 것입니다. 이런 분들은 처음 공부가 익어질 때 쯤, 어서 남을 가르치고 싶어하고 가르침을 몰라 주면 섭섭하고 안타까워하게 됩니다. 그러다 따르는 무리가 좀 있으면 교만해지기도 합니다.
이때는. 어떤 착각을 가장 먼저 하게 되느냐 하면, 자기의 도가 세상에서 가장 뛰어나다고 착각을 하게 됩니다.

얼마 안 있으면 세상의 모든 사람이 나의 법을 배울 것이다. 제자가 몇만 명이 될 것이다. 호언을 하기도 합니다. 또 많은 사람이 나 때문에 깨달음을 얻을 것이다. 모든 종교는 나의 그늘에 들어올 것이다. 그런가 하면 세상의 예언자라도 되는 양, 앞뒤 없는 말을 흘리기도 하게 됩니다. 실상 훌륭한 분들이 많지만 엉뚱한 착각 속에 사는 분들도 있어서 세상을 소란하게 할 때가 있는 것입니다.
조용히 있는 분들이라도 마음속에 그런 마음을 가진 분들이 간혹 있어요. 그러면서도 자기의 집착과 허물을 모릅니다.

너무 알았다는 생각과 남을 가르쳐야겠다는 호승심이 앞을 가리는 것 때문일 것이고 불교를 위하는 마음이 너무 강해서 그렇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뜻은 어찌 되었든 지나치면 병통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 마음으로, 따르는 제자들을 모두 법상에 걸리게 해 버립니다.
인연 있는 사람들은 모두 스승을 존경하기 때문에 말한 대로 믿을 수밖에 없어서 그런 것입니다. 다 교만과 자만심으로 무장하게 되겠지요.

합리적이고 베푸는 마음, 그리고 욕심과 교만을 버리는 마음으로 닦으면 위와 같은 폐단은 걱정 안 해도 될 것입니다. 합리성이 없는 공부는 공부를 아니 함만 못할 때도 있는 것입니다.
부처님은 간절하게 그것을 가르쳐 주고 계십니다.
법상에도 걸리지 말라는 말씀이 아마도 이 난에서는 가장 중요한 요점인가 합니다.

 

뗏목에 비유함)

"이러한 까닭으로 여래가 항상 말하기를 너희 비구들은 나의 설법을, '뗏목과 같음을 알아라. 하고' 비유하였느니라. 오히려 법도 응당 버려야 하거늘 하물며 법 아님이야. "
그 때문에 여래께서 항상 말씀하시기를, 나의 설법을 듣고 뗏목과 같이 집착하지 말라고 비유하셨던 것입니다.

 부처님의 말씀은 한 마디 한 마디가 소홀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부처님의 말씀을 알았거든 놓아 버리라는 것입니다. 물론 제대로 안다면 놓고 말고 할 게 어디 있겠으며 붙잡고 있을 까닭은 무엇이겠습니까 만. 
아무튼 마음에 정해 두고 있으면 이미 비법이 되고 만다는 것입니다.

비유하건대 뗏목을 타고 강을 건넜다면 뗏목은 마땅히 강에 그대로 두고 갈 길을 가야지 뗏목이 자기를 건네주었다고 고마워하면서 어깨에 메고 길을 간다면 어리석다. 아니할 수가 없겠지요.
여기서 정말 위대한 부처님의 가르침을 대하게 됩니다.
일단 닦을 때는 끝까지 법리를 알기 위해서 노력을 해야 할 것이지만 알았다면 알았다는 것까지 염두에 두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알았다는 상념이 늘 떠나지 않는다든지 어떤 경계를 얻고 거기에 빠져 있다면 뗏목을 어깨에 메고 다니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처님의 가르침마저도 집착하지 말아야 할 것인데 그 나머지 세간의 다른 법이야 말할 것이 있겠습니까. 도대체 어떤 법을 붙들고 염두에 둘만하다 하겠습니까?
모든 종교의 가르침이나 사상들은 모두 자기의 법이 최고의 진리라고 말을 합니다. 그러나 부처님처럼 그마저도 집착하지 말라고 가르치지는 않을 것입니다.
일체 속박을 끊어 주려는 부처님의 자비가 한껏 드러납니다.

불교는 얽매는 종교가 아니고 얽힘에서 벗어나는 종교인 것입니다. 벗어나도 멀리 떠나거나 배척을 해서 벗어나는 것이 아닌 생활 속에서 속박을 끊어 버리는 것입니다. 보다 적극적이고 지혜로운 삶이 되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비유 하자면, 강물이 굽이굽이 돌고 돌아 바다로 흘러가듯이 무리 없이 해탈로 이끌어 주는 것입니다.


  (주) 知我說法 如筏喩者는 역본마다 차별이 심하게 나는 대목입니다. 뜻은 대동소이 하나 약간씩의 차이가 있습니다. 여기서는 "나의 설법을, 뗏목과 같음을 알아라.하고 비유하였느니라." 로 역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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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경:제23. 청정한 마음으로 선을 행함

벽공 8960 금강경:제23. 청정한 마음으로 선을 행함
제23. 청정한 마음으로 선을 행함 2001, 10월 19일 (선법,아뇩다라샴막삼보리,청정한 마음으로 선을 행함,)   ⊙금강경: 제23, 청정한 마음으로 선을 행함.   원문 淨心行善分, 第二十三. 정심행선분, 제이십삼. 復次 須菩提 是法 平等 無有高下 是名 阿搙多羅三藐 부차 수보리 시법 평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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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경:제22. 법은 가히 얻음이 없다

벽공 8602 금강경:제22. 법은 가히 얻음이 없다
제22. 법은 가히 얻음이 없다. 2001, 10월 19일 (법은 얻음이 없다. 흔적없는 교훈, 생각의 반복과 집착,)    ⊙금강경: 제22, 법은 가히 얻음이 없다.   원문 無法可得分, 第二十二. 무법가득분, 제이십이.   須菩提 白佛言 世尊 佛 得 阿搙多羅三藐三菩提 爲 無 수보리 백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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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경:제 21. 설 해도 설 함이 아니다

벽공 9309 금강경:제 21. 설 해도 설 함이 아니다
제 21. 설 해도 설 함이 아니다 2001, 10월 11일 (설해도 설함이 아니다, 중생이라도 이름일 뿐, 중생이 아니다.)   ⊙금강경: 제 21, 설 해도 설 함이 아니다.   원문 非說所說分, 第二十一. 비설소설분, 제이십일.   須菩提 汝勿謂 如來作是念 我 當有所說法 莫作是念 수보리 여물위 여래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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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경:제20. 색을 떠나고 상을 떠나다

벽공 19184 금강경:제20. 색을 떠나고 상을 떠나다
제20. 색을 떠나고 상을 떠나다. 2001, 10월 11일  (색신 구족상,모습으로 부처를 볼수가 없다.)   ⊙금강경: 제20, 색을 떠나고 상을 떠나다.   원문 離色離相分, 第二十. 이색이상분, 제이십.   須菩提 於意云何 佛 可以具足色身 見不 不也 世尊 수보리 어의운하 불 가이구족색신 견부 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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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경:제14. 상을 떠난 적멸.

벽공 11178 금강경:제14. 상을 떠난 적멸.
제14. 상을 떠난 적멸. 2 2001, 8월 13일  (육안,천안,혜안,법안,불안,희유한 인연,인욕선인,가리왕,달마대사,돈오점수,방편력,보살의 마음,)    ⊙금강경: 제14, 상을 떠난 적멸.  원문離相寂滅分, 第十四. 이상적멸분, 제십사. 爾時 須菩提 聞說是經 深解義趣 涕淚悲泣 而白佛言 이시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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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경:제13. 여법하게 받아지님

벽공 9641 금강경:제13. 여법하게 받아지님
 2001,7월 23일   (금강반야바라밀경,보시,사구게,32상,환상,보시와 사구게 공덕 비교,신행방법,형상으로 부처를 보지 못한다.)    ⊙금강경: 제13, 여법하게 받아 지님.   원문 如法受持分, 第十三. 여법수지분, 제십삼.   爾時 須菩提 白佛言 世尊 當 何名此經 我等 云何奉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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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경:제12. 바른 가르침을 높이 모심.

벽공 9466 금강경:제12. 바른 가르침을 높이 모심.
 2001, 7월 16일  (금강경수지공덕,사구게의 공덕,천인 아수라 인간 찬탄 )   ⊙금강경: 제12, 바른 가르침을 높이 모심.   원문 尊重正敎分, 第十二. 존중정교분, 제십이.   復次 須菩提 隨說是經 乃至四句偈等 當知 此處 一 부차 수보리 수설시경 내지사구게등 당지 차처 일 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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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경:제11. 무위복이 수승하다

벽공 21010 금강경:제11. 무위복이 수승하다
(항하사,사구게,보시,복의 속성,숙달,창의력,화합,)   (항하사,사구게,보시,복의 속성,숙달,창의력,화합,)   ⊙금강경: 제11, 무위복이 수승하다.   원문 無爲福勝分, 第十一. 무위복승분, 제십일.   須菩提 如恒河中所有沙數 如是沙等恒河 於意云何 수보리 여항하중소유사수 여시사등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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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경:제10. 정토를 장엄한다

벽공 19326 금강경:제10. 정토를 장엄한다
 2001, 7월 4일    (연등불수기,불국토,색성향미촉법,수미산,미륵하생경,정토장엄,)    ⊙금강경: 제10, 정토를 장엄한다.   원문 莊嚴淨土分, 第十. 장엄정토분, 제십.   佛告 須菩提 於意云何 如來 昔在燃燈佛所 於法 有 불고 수보리 어의운하 여래 석재연등불소 어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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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경:9. 하나의 상도 상이 아니다

벽공 10794 금강경:9. 하나의 상도 상이 아니다
 2001, 6월 25일    (성문사과,수다원,사다함,아나함,아라한,무쟁삼매,)    ⊙금강경: 9, 하나의 상도 상이 아니다.   원문 一相無相分, 第九. 일상무상분, 제구.   須菩提 於意云何 須陀洹 能作是念 我得 須陀洹果不 수보리 어의운하 수다원 능작시념 아득 수다원과부 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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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경:제8. 법에 의해 출생한다

벽공 9962 금강경:제8. 법에 의해 출생한다
(사구게,사구게 공덕,사구게 실천,보시 재물,칠보,삼천대천세계,)  2001, 6월 18일  (사구게,사구게 공덕,사구게 실천,보시 재물,칠보,삼천대천세계,) ⊙금강경: 제8, 법에 의해 출생한다.   원문 依法出生分, 第八. 의법출생분, 제팔.   須菩提 於意云何 若人 滿 三千大千世界七寶 以用布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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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경:제7. 얻음도 설함도 없다.

벽공 20102 금강경:제7. 얻음도 설함도 없다.
2001, 6월 11일   (아뇩다라샴막삼보리,무위법,무상정등각,무상정진각,)   ⊙금강경: 제7, 얻음도 설함도 없다.   원문 無得無說分, 第七. 무득무설분, 제칠.   須菩提 於意云何 如來得 阿搙多羅三藐三菩提耶 如 수보리 어의운하 여래득 아뇩다라삼먁삼보리야 여 來有 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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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경:제6. 바른 믿음은 희유하다

벽공 11746 금강경:제6. 바른 믿음은 희유하다
2001, 6월 4일  (후오백세,정법시대,말법시대,법상,비법상,)    ⊙금강경: 제6, 바른 믿음은 희유하다.   원문 正信希有分, 第六. 정신희유분, 제육. 須菩提 白佛言 世尊 頗有衆生 得聞如是言說章句 生 수보리 백불언 세존 파유중생 득문여시언설장구 생 實信不 佛告 須菩提 莫作是說 如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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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경:제5. 실다운 진리를 보아라

벽공 10994 금강경:제5. 실다운 진리를 보아라
2001 5월 28일  (여래,신상,32상,80종호,실다운 진리,)  ⊙금강경: 제5, 실다운 진리를 보아라.   원문 如理實見分, 第五. 여리실견분, 제오.   須菩提 於意云何 可以身相 見如來不 不也世尊 不可 수보리 어의운하 가이신상 견여래부 불야세존 불가 以身相 得見如來 何以故 如來 所說身相 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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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경:제4. 머무름 없는 묘한 행

벽공 14269 금강경:제4. 머무름 없는 묘한 행
2001, 5월 21일  (보시,보시행,보시행공덕,화합,) ⊙금강경: 제4, 머무름 없는 묘한 행.   원문 妙行無住分, 第四. 묘행무주분, 제사.   復次 須菩提 菩薩 於法 應無所住 行於布施 所謂 不住色 부차 수보리 보살 어법 응무소주 행어보시 소위 부주색 布施 不主 聲香味觸法 布施 須菩提 菩薩 應 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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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경:제 3. 대승의 바른 종지

벽공 18340 금강경:제 3. 대승의 바른 종지
(금강경,금강경강의,벽공스님번역강의,불교명상수련원,)2001, 5월 16일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태생,난생,습생,화생,보살마하살,) ⊙금강경: 제3, 대승의 바른 종지.   원문 大乘正宗分, 第三. 대승정종분, 제삼.   佛告 須菩提 諸菩薩 摩訶薩 應如是 降伏其心 所有一切 불고 수보리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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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경:제2. 선현이 법을 청하다

벽공 17345 금강경:제2. 선현이 법을 청하다
(금강경강의,금강반야바라밀경,능단금강반야바리밀,구마라집,현장법사,의정스님,벽공스님강의,불교명상수련원,)   (선남자,선여인,항복,수보리존자,선현,공생,보살마하살,)    ⊙금강경: 제2, 선현이 법을 청하다.   원문 善現起請分, 第二. 선현기청분, 제이. 時 長老須菩提 在 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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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경:제 1. 법회가 열린 인연

벽공 17889 금강경:제 1. 법회가 열린 인연
(금강경강의,금강반야바라밀경,능단금강반야바리밀,구마라집,현장법사,의정스님,벽공스님강의,불교명상수련원,)  금강반야바라밀경 2001, 05 03 일  (가섭존자,아난존자,왕사성,기수급고독원,사위국,발우,공양,)   ⊙금강경: 제1, 법회가 열린 인연.  원문金剛般若波羅密經法會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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