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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만대장경

팔만대장경) 출처 동국역경원, 전자불전문화제콘텐츠연구소

작성일 2003/06/05
돈수 부처님 행 (육조단경 중에서)성철스님 역 - 팔만대장경, 불교경전, 부처님가르침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선지식들아, 너희들은 다들 이 게송을 외어 가지라. 이 게송을 의지하여 수행을 하면 천리를 혜능과 떨어져 있더라도 항상 혜능의 곁에 있는 것이요, 이를 수행하지 않으면 얼굴을 마주하여도 천리를 떨어져 있는 것이다. 각각 스스로 수행하면 법을 서로 지님이 아니겠느냐.
여러 사람들은 그만 흩어지거라. 혜능은 조계산(曹溪山)으로 돌아가리라. 만약 대중 가운데 큰 의심이 있거든 저 산으로 오너라. 너희를 위하여 의심을 부수어 같이 부처의 성품을 보게 하리라(同見佛性)."
함께 앉아 있던 관료·스님·속인들이 육조대사께 예배하며 찬탄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그들은 '훌륭하십니다. 크게 깨치심이여! 옛적에는 미처 듣지 못한 말씀입니다. 영남에 복이 있어 산부처가 여기 계심을 누가 능히 알았으리오'한 다음 한꺼번에 다 흩어졌다.

대사께서 조계산으로 가시어 소주(韶州)·광주(廣州) 두 고을에서 교화하기를 사십여 년이었다.
만약 문인을 말한다면 스님과 속인이 삼오천 명이라 이루 다 말할 수 없으며, 만약 종지(宗旨)를 말한다면 <단경>을 전수하여 이로써 의지하여 믿음을 삼게 하였다. 만약 <단경>을 얻지 못하면 곧 법을 이어받지 못한 것이다. 모름지기 간 곳과 년 월 일과 성명을 알아서 서로 서로 부촉하되 <단경>을 이어받지 못하였으면 남종(南宗)의 제자가 아니다. <단경>을 이어받지 못한 사람은 비록 돈교법(頓敎法)을 말하나 아직 근본을 알지 못함이라, 마침내 다툼을 면치 못한 것이다. 그러므로 오로지 법을 얻은 사람에게만 (돈교법의) 수행함을 권하라. 다툼은 이기고 지는 마음이니 도(道)와는 어긋나는 것이다.


24. 頓修 - 단박에 닦음

세상 사람이 다 전하기를 '남쪽은 혜능이요 북쪽은 신수(南能北秀)'라고 하나 아직 근본 사유를 모르는 말이다.
또 신수(神秀)선사는 형남부 당양현 옥천사(玉泉寺)에 주지하며 수행하고, 혜능대사는 소주성 동쪽 삼십오 리 떨어진 조계산에 머무시니, 법은 한 종(宗)이나 사람에게 남쪽과 북쪽이 있어 이로 말미암아 남쪽과 북쪽이 서게 되었다.
어떤 것을 '점(漸)'과 '돈(頓)'이라고 하는가?
법은 한가지로되 견해에 더디고 빠름이 있기 때문이다. 견해가 더딘즉 '점(漸)'이요, 견해가 빠른즉 '돈(頓)'이다. 법에는 '점'과 '돈'이 없으나 사람에게는 영리함과 우둔함이 있는 까닭으로 '점'과 '돈'이라고 이름한 것이다.

일찍이 신수스님은 사람들이 혜능스님의 법이 빠르고 곧게 길을 가리킨다(疾直指路)고 말하는 것을 보았다. 신수스님은 드디어 문인 지성(志誠)스님을 불러 말하였다.
"너는 총명하고 지혜가 많으니, 나를 위하여 조계산으로 가라. 가서 혜능스님의 처소에 이르러 예배하고 듣기만 하되, 내가 보내서왔다 하지 말라. 들은대로 그 뜻을 기억하여 돌아와서 나에게 말하여라. 그래서 혜능스님과 나의 견해가 누가 빠르고 더딘지를 보게 하여라. 너는 첫째로 빨리 오너라. 그래서 나로 하여금 괴이하게 여기지 않도록 하라."
지성은 기쁘게 분부를 받들어 반달쯤 걸려서 조계산에 도달하였다. 그는 혜능스님을 뵙고 예배하여 법문을 들었으나 온 곳을 말하지 않았다.

지성은 법문을 듣고 그 말끝에 문득 깨달아 곧 본래의 마음에 계합하였다(卽契本心). 그는 일어서서 예배하고 스스로 말하였다.
"큰스님이시여, 제자는 옥천사에서 왔습니다. 신수스님 밑에서는 깨치지 못하였으나 큰스님의 법문을 듣고 문득 본래의 마음에 결합하였습니다. 큰스님께서는 자비로써 가르쳐 주시기 바라옵니다."
혜능대사께서 말씀하셨다.
"네가 거기에서 왔다면 마땅히 염탐꾼이렷다!"
지성이 말하였다.
"말을 하기 이전에는 그렇습니다만, 말씀을 드렸으니 이미 아니옵니다."
육조대사께서 말씀하셨다.
"번뇌가 곧 보리임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대사께서 지성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들으니 너의 스님이 사람을 가르치기를 오직 계·정·혜(戒定惠)를 전한다고 하는데, 너의 스님이 사람들에게 가르치는 계·정·혜는 어떤 것인가? 마땅히 나를 위해 말해 보라."
지성이 말하였다.
"
신수스님은 계·정·혜를 말하기를 '모든 악(惡)을 짓지 않는 것을 계(戒)라고 하고, 모든 선(善)을 받들어 행하는 것을 혜(惠)라고 하며, 스스로 그 뜻을 깨끗이 하는 것을 정(定)이라고 한다. 이것이 곧 계·정·혜이다'고 합니다. 신수스님의 말씀은 그렇거니와, 큰스님의 의견은 어떠신지 알지 못합니다.
혜능스님께서 대답하셨다.
"그 법문은 불가사의하나 혜능의 소견은 또 다르니라."
지성이 여쭈었다.
"어떻게 다릅니까?"
혜능스님께서 대답하셨다.
"견해에 더디고 빠름이 있느니라."
지성이 계·정·혜에 대한 스님의 소견을 청하였다.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너는 나의 말을 듣고서 나의 소견을 보라.
마음의 땅(心地)에 그릇됨이 없는 것(無非)이 자성의 계(戒)요, 마음의 땅에 어지러움이 없는 것(無亂)이 자성의 정(定)이요, 마음의 땅에 어리석음이 없는 것(無癡)이 자성의 혜(惠)이니라."
혜능대사께서 말씀하셨다.
"너의 계·정·혜는 작은 근기의 사람에게 권하는 것이요, 나의 계·정·혜는 높은 근기의 사람에게 권하는 것이다. 자기의 성품을 깨치면 또한 계·정·혜도 세우지 않느니라."

지성이 여쭈었다.
"큰스님께서 세우지 않는다고 말씀하시는 뜻은 어떤 것입니까?"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자기의 성품은 그릇됨도 없고, 어지러움도 없으며, 어리석음도 없다. 생각 생각마다 지혜로 관조(觀照)하여 항상 법의 모양을 떠났는데, 무엇을 세우겠는가. 자기의 성품을 단박 닦으라(自性頓修). 세우면 점차가 있으니 그러므로 세우지 않느니라."
지성은 예배하고서 바로 조계산을 떠나지 아니하고 곧 문인이 되어 대사의 좌우를 떠나지 않았다.


25. 佛行 - 부처님의 행

또 한 스님이 있었는데 법달(法達)이라 하였다. 항상 <법화경>을 외어 칠년이 되었으나 마음이 미혹하여 바른 법의 당처(正法之處)를 알지 못하더니, 와서 물었다.
"경에 대한 의심이 있습니다. 큰스님의 지혜가 넓고 크시오니 의심을 풀어 주시기 바랍니다."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법달아, 법은 제법 통달하였으나 너의 마음은 통달하지 못하였구나. 경 자체는 의심이 없거늘 너의 마음이 스스로 의심하고 있다. 네 마음이 스스로 삿되면서 바른 법을 구하는구나.
나의 마음 바른 정(正定)이 곧 경전을 지니고 읽는 것이다. 나는 한평생 동안 문자를 모른다. 너는 <법화경>을 가지고 와서 나를 마주하여 한 편을 읽으라. 내가 들으면 곧 알 것이니라."
법달이 경을 가지고 와서 대사를 마주하여 한 편을 읽었다.
육조스님께서 듣고 곧 부처님의 뜻을 아셨고 이내 법달을 위하여 <법화경>을 설명하시었다.

육조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법달아, <법화경>에는 많은 말이 없다. 일곱 권이 모두 비유와 인연이니라.
부처님께서 널리 삼승(三乘)을 말씀하심은 다만 세상의 근기가 둔한 사람을 위함이다. 경 가운데서 분명히 '다른 승이 있지 아니하고 오로지 한 불승(佛乘)뿐이라'고 하셨느니라."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법달아, 너는 일불승(一佛乘)을 듣고서 이불승(二佛乘)을 구하여 너의 자성을 미혹하게 하지 말라. 경 가운데서 어느 곳이 일불승인지를 너에게 말하리라.
경에 말씀하기를 '모든 부처님·세존께서는 오직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 때문에 세상에 나타나셨다'고 하셨다. 이 법을 어떻게 알며 이 법을 어떻게 닦을 것인가? 너는 나의 말을 들어라.

사람의 마음이 생각을 하지 않으면 본래의 근원이 비고 고요(空寂)하여 삿된 견해를 떠난다. 이것이 곧 일대사인연이리라. 안팎이 미혹하지 않으면 곧 양변(兩邊)을 떠난다. 밖으로 미혹하면 모양에 집착하고 안으로 미혹하면 공에 집착한다. 모양에서 모양을 떠나고 공에서 공을 떠난 것이 곧 미혹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법을 깨달아 한 생각에 마음이 열리면 세상에 나타나는 것이니라.
마음에 무엇을 여는가?
부처님의 지견을 여는 것이다. 부처님은 깨달음이니라. 네 문으로 나뉘나니, 깨달음의 지견을 여는 것(開)과 깨달음의 지견을 보이는 것(示)과 깨달음의 지견을 깨침(悟)과 깨달음의 지견에 들어가는 것(入)이니라.
열고 보이고 깨닫고 들어감(開示悟入)은 한 곳으로부터 들어가는 것이다. 곧 깨달음의 지견으로 자기의 본래 성품을 보는 것이 곧 세상에 나오는 것이니라."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법달아, 나는 모든 세상 사람들이 스스로 언제나 마음 자리로 부처님의 지견(知見)을 열고 중생의 지견을 열지 않기를 항상 바라노라. 세상 사람의 마음이 삿되면 어리석고 미혹하여 악을 지어 스스로 중생의 지견을 열고, 세상 사람의 마음이 발라서 지혜를 일으켜 관조하면 스스로 부처님 지견을 여나니, 중생의 지견을 열지 말고 부처님의 지견을 열면 곧 세상에 나오는 것이니라."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법달아, 이것이 <법화경>의 일승(一乘)법이다. 아래로 내려가면서 삼승(三乘)을 나눈 것은 미혹한 사람을 위한 까닭이니, 너는 오직 일불승만을 의지하라."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법달아, 마음으로 행하면(心行) <법화경>을 굴리고(轉法華), 마음으로 행하지 않으면 <법화경>에 굴리게 되나니, 마음이 바르면 <법화경>을 구리고 마음이 삿되면 <법화경>에 굴리게 되느니라. 부처님의 지견을 열면 <법화경>을 굴리고 중생의 지견을 열면 <법화경>에 굴리게 되느니라."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힘써 법대로 수행하면 이것이 곧 경을 굴리는 것(轉經)이니라."
법달은 한 번 듣고 그 말끝에 크게 깨달아 눈물을 흘리고 슬피 울면서 스스로 말하였다.
"큰스님이시여, 실로 지금까지 <법화경>을 굴리지 못하였습니다.
칠년을 <법화경>에 굴리어 왔습니다. 지금부터는 <법화경>을 굴려서 생각 생각마다 부처님의 행을 수행하겠습니다."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부처님 행이 곧 부처님이니라(卽佛行是佛)."
그 때 듣는 사람으로서 깨치지 않은 이가 없었다.


26. 參請 - 예배하고 법을 물음

그 무렵 지상(智常)이라고 하는 한 스님이 조계산에 와서 큰스님께 예배하고 사승법(四乘法)의 뜻을 물었다.
지상이 큰스님께 여쭈었다.
"부처님은 삼승(三乘)을 말씀하시고 또 최상승(最上乘)을 말씀하시었습니다. 제자는 알지 못하겠사오니 가르쳐 주시기 바랍니다."
혜능대사가 말씀하셨다.
"너는 자신의 마음으로 보고 바깥 법의 모양에 집착하지 말라. 원래 사승법이란 없느니라. 사람의 마음이 스스로 네 가지로 나누어 법에 사승(四乘)이 있을 뿐이다.
보고 듣고 읽고 욈은 소승(小乘)이요, 법을 깨쳐 뜻을 앎은 중승(中乘)이며, 법을 의지하여 수행함은 대승(大乘)이요 일만 가지 법을 다 통달하고 일만 가지 행을 갖추어 일체를 떠남이 없으되 오직 법의 모양을 떠나고 짓되, 얻은 바가 없는 것이 최상승(最上乘)이니라. 승(乘)은 행한다는 뜻이요 입으로 다투는 것에 있지 않다. 너는 모름지기 스스로 닦고 나에게 묻지 말라."

또 한 스님이 있었는데 이름을 신회(神會)라고 하였으며 남양 사람이다. 조계산에 와서 예배하고 물었다.
"큰스님은 좌선하시면서 보십니까? 보지 않으십니까?"
대사께서 일어나서 신회를 세 차례 때리시고 다시 신회에게 물었다.
"내가 너를 때렸다. 아프냐, 아프지 않으냐?"
신회가 대답하였다.
"아프기도 하고 아프지 않기도 합니다."
육조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보기도 하고 보지 않기도 하느니라."
신회가 또 여쭈었다.
"큰스님은 어째서 보기도 하고 보지 않기도 하십니까?"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본다고 하는 것은 항상 나의 허물을 보는 것이다. 그러므로 본다고 말한다. 보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하늘과 땅과 사람의 허물과 죄를 보지 않는 것이다. 그 까닭에 보기도 하고 보지 않기도 하느니라. 네가 아프기도 하고 아프지 않기도 하다 했는데 어떤 것이냐?"

신회가 대답했다.
"만약 아프지 않다고 하면 곧 무정(無情)인 나무와 돌과 같고, 아프다 하면 곧 범부와 같아서 이내 원한을 일으킬 것입니다."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신회야, 앞에서 본다고 한 것과 보지 앉는다고 한 것은 양변(兩邊)이요, 아프고 아프지 않음은 생멸(生滅)이니라. 너는 자성을 보지도 못하면서 감히 와서 사람을 희롱하려 드는가?"
신회가 예배하고 다시 더 말하지 않으니,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네 마음이 미혹하여 보지 못하면 선지식에게 물어서 길을 찾아라. 마음을 깨쳐서 스스로 보게 되면 법을 의지하여 수행하라(依法修行). 네가 스스로 미혹하여 자기 마음을 보지 못하면서 도리어 와서 혜능의 보고 보지 않음을 묻느냐? 내가 보는 것은 내 스스로 아는 것이라 너의 미혹함을 대신할 수 없느니라. 만약 네가 스스로 본다면 나의 미혹함을 대신하겠느냐? 어찌 스스로 닦지 아니하고 나의 보고 보지 않음을 묻느냐?"
신회가 절하고 바로 문인이 되어 조계 산중을 떠나지 않고 항상 좌우에 머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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