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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만대장경

팔만대장경) 출처 동국역경원, 전자불전문화제콘텐츠연구소

작성일 2003/06/08
불교예절 - 팔만대장경, 불교경전, 부처님가르침

절도량을 들어갔을 때  대웅전에 들어갔을 때 큰스님을 친견하러 갔을 경우  불전에 들어갈 때    발 아래를 살펴라    다른 사람의 수행을 방해하지 말아야    공양물을 올리는 예법   보살님께도 정성을    악한 무리로부터 보호해주는 신중단에도    먼저 극락세계에 가신 영가들께   부처님 앞에 앉거나 설 때    마음을 활짝 열자    경전을 대하는 마음    기도를 하고 싶으면    예불에 동참하는 법    법문을 들으면 세상이 새롭게 보인다    법문을 듣는 자세    법회를 마치면

절도량을 들어갔을 때

1. 일주문이 보이면

일주문이 뭐냐고 물으실 벗님이 계실지도 모르겠다. 글자로 본다면 一柱門이다. 즉 기둥이 하나만 있는 문이라고 하는 의미가 되겠는데, 대개 산중의 큰 절을 들어가면 멀리 입구에 해당하는 부근에서 기둥만 두 개 서있고, 그 위에 지붕은 근사하게 되어 있으면서 '靈鷲山通度寺' 라던지 '伽倻山 海印寺' 라고 적인 편액이 반겨주게 된다. 즉 여기서부터 절의 경내가 된다는 의미겠다. 그러면 찾아가는 불자의 입장에서는 마음을 경건하게 갖고 잠시 자신의 주변을 둘려 보는 것이 좋겠다.

이미 소지품이나 의상 등은 그대로 해 가지고 왔으므로 설령 노출이 심한 옷을 입었다고 하더라도 어쩔 수가 없다고 보면 된다. 절을 찾는 경우에 대개는 주로 관광을 겸해서 가기 때문에 절에만 가는 것이 목적이 되지 않다 보니까, 의상 등이 절의 분위기와 맞지 않을 가능성이 더 많을 것이다. 그래서 스님들도 그러려니... 한다. 다만 예전에 남해 보리암에서 기도를 하는데, 아가씨들이 상주해수욕장에서 수영을 하다가는 비키니 차림으로 보리암까지 올라왔던 적도 있었다. 물론 깔꺼러운(?) 스님의 눈에 띄이면 눈물이 퍽 쏟아지게 야단을 들을 수도 있겠지만, 이것은 순전히 스스로의 양식 문제라고 보고 싶다. 왜냐면 인도에서는 완전누드로 수행을 하는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이 한국의 절에 왔는데, 야단을 친다면 오히려 너무 껍질에 마음을 쓴 것이 아니겠느냐는 생각을 하게 될 수도 있겠다.

낭월이의 생각으로는 아무래도 좋다고 본다. 보기도 좋고 나쁠 것이 없다고 보겠다. 중요한 것은 껍질이 아니라 마음이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여성이 비키니 차림으로 절에 들려서 절을 한다면 그것도 또한 보기 좋은 그림이 아니겠는가 싶은 생각도 든다. 역시 크게 나무랄 일은 되지 못할 것으로 보고 싶다. 다만 절에서 연인들이 키스를 한다던지 절 마당에서 삼겹살을 구워 먹는 장면이 있다면 이것은 마음이 잘못된 것이다. 이런 경우에는 야단을 맞을 가능성이 많겠다.

2. 사천왕문 앞에서

사천왕은 일주문을 지나서 본격적으로 절 도량에 들어서는 위치에 버티고 계신다. 눈알을 부라리면서 네 분의 호법 신장들이 각기 고유의 무기를 손에 들고, 방문객을 위아래로 훑어보고 있는 장면은 그럴싸하다. 물론 여기서부터는 엄숙한 부처님의 도량이라는 이미지가 강력하게 풍겨 나온다. 예전에는 원하지 않는 임신을 하면 절로 데리고 와서 사천왕을 만나게 했다고 들었다. 그러면 놀라서 임신부가 유산을 하게 된다는 말인 모양인데, 아무래도 큰 효과는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방문자가 사천왕을 보는 순간 너무나 무섭고 두려워서 자기도 모르게 절을 했다면 구태여 말릴 생각은 없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절까지 할 필요는 없다. 반 절도 하지 않아도 된다. 다만 대웅전을 향해서 합장 배례 정도라면 너무 아름다운 그림이라고 하겠다. 시골의 할머니들은 이 곳을 통과하면서 그냥 지나치면 큰 일이라도 날 것처럼 부지런히 각각 천왕 님들에게 고두백배를 하고 통과하기도 하는데, 그럴 필요는 없다. 그렇다고 그냥 뻣뻣하게 가는 것도 과히 아름답지는 않다.

참고로 사천왕의 의미를 설명해 드린다면 이렇다. 東方을 지키는 天王은 지국천왕이고, 남방을 지키는 천왕은 증장천왕이며, 서방을 지키는 천왕은 광목천왕, 그리고 북방을 지키는 천왕은 비사문천왕이다. 그리고 이 팀에서 가장 큰 형님은 비사문천왕이라고 하며 비사문 천왕의 손에는 대개 불탑이 들려있다. 이것을 오행의 배치에 대입시켜서 어떤 절이 사천왕은 피부 색깔로써 구분하기도 하는데, 참고로 말씀드린다면 동방은 청색이고, 남방은 붉은 색이며, 서방은 흰색, 북방은 검은색이 된다. 이러한 색깔을 알고서 잘 관찰해보면 과연 그런 의미를 부여한 곳이 상당히 있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을 것이다. 그냥 대충 사천왕이구나.. 하고 지나쳐도 상관은 없다.

3. 대웅전 앞에서

실은 불자 들만 절에 가는 것은 아니다. 비불자도 절에는 갈 수가 있다. 겉으로 봐서 확연하게 표가 나는 수녀 님들이 절도량을 찾는 것도 아름다운 장면이라고 하겠는데, 그런 경우에 대웅전에 가서 절을 하리라고는 장담할 수 없다. 다만 불교와 상관이 없더라도, 일단 대웅전 앞에서 내부를 살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야말로 구경을 하는 차원이 되겠지만 말이다.

이때에 필요한 것이 바로 합장(合掌)이다. 낭월이는 글을 쓸 때마다 항상 '두손모음' 이라는 말을 끝에 붙인다. 이것은 합장의 우리말 식이다. 아름다운 우리말을 가능하면 많이 사용하자는 의미도 들어있다. 여하튼 이제 합장이라고 하는 것을 해보는 것도 교양이 있어 보이는 장면에 다다르게 되었다. 대웅전 앞에서는 일단 기가 질리게 된다. 너무나 웅장한 건물이 그럴 것이다. 그리고 대웅전 앞으로 계단이 있을 경우라고 하더라도 예의를 갖추려고 한다면 대웅전의 측면으로 나있는 계단을 이용하는 것이 더욱 예의 바른 사람이다.

말인 즉, 정문에는 신장님들이 호법을 하고 있는데, 괜히 잘못 통과 하다가는 한 대 얻어 터질지도(?) 모른다는 말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당당하게 앞으로 들어가는 것이 서양에서는 어떨지 몰라도 우리 식의 정서에서는 과히 멋져 보이지는 않는 장면인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여하튼 대웅전 뜰에 올라섰다면 일단 정면의 열린 문(혹은 닫혀 있을 수도 있다.) 앞에서 공경스럽게 합장하고 머리를 숙이는 것으로도 방문자의 예의는 충분히 한 셈이 된다. 그리고 불자이면서 시간이 급해서 안으로 들어갈 시간적인 여유가 없을 경우에는 세 번 머리를 조이라면 된다. 그 의미는 삼보께 절을 세 번 하는 것이 원칙으로 되어 있는 불교의 법에 의해서이다. 그렇게 하고서 나머지 전각들을 둘러보면 된다. 절의 규모에 따라서 각각이겠지만, 적게는 서너 군데에서 많게는 10여 군대가 넘는 곳도 있다.

그리고 문화재에 대해서 관심이 많은 경우라고 한다면 보물이 어디 있는지 국보는 어디 있는지를 살펴서 유심히 살펴보는 것도 좋은 공부가 될 것으로 본다. 그렇게 둘러보다가 스님이라도 만난다면 불자의 경우에는 합장하고 머리 한번 숙이면 충분하고 불교도가 아닐 경우에는 간단히 머리를 까딱 하는 것으로도 충분히 교양이 넘치는 사람이라고 할 것이다. 마치 십년 전의 웬수를 만난 듯이, 노려보는 것도 아쉽고, 또 불쌍한 고아나 거렁뱅이를 보는 기분으로 측은하게 보는 것도 과히 좋은 풍경은 아니다. 그러다가는 자칫 성질 더러븐(?) 스님에게 부딧치기라고 하면 아마도 된통으로 구박을 당할지도 모를 일이다. 여하튼 길가다 만나는 것도 인연이라고 생각하고 가볍게 목례 정도는 하는 것이 보기에 좋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봤다.

이 정도의 상식이라면 어느 절이던지 찾아가서 둘러보고 놀다가 하산을 해도 허물이 없을 것으로 본다. 혹 이러한 것으로 인해서 마음이 께름찍한 부분이 있었다면 차제에 잘 알아 두시면 두고두고 편안하실 것이다. 기본적인 예의는 이 정도로 줄인다.



대웅전에 들어갔을 때

이제 본격적으로 예절에 대해서 알아 둘 필요가 있겠다. 여기에서는 대웅전의 대표로 살펴보기로 한다. 그러니까 나머지의 다른 전각들에 대해서도 같은 방법을 적용시키면 될 것이다.

1. 들어가는 방법

별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알아두지 않으면 법당을 관리하는 할머니께 야단을 들을 지도 모른다. 아마도 그 야단은 일단 부처님의 정문으로 들어가려고 시도했을 경우에 듣게 될 것이다. 다시 말씀드리면 일단 법당으로 들어갈 경우에는 좌우의 측면으로 기웃거려 봐야 한다. 그래서 오른쪽이든 왼쪽이든 간에 일단 열린 문이 있다면 그 문으로 들어가면 된다. 물론 문 앞에서 합장하고 허리를 한번 굽힌다면 금상첨화이다.

정문은 '어간문'이라고 부르는데, 부처님과 그 절에서 가장 지위가 높은 스님만 출입을 할 수가 있는 문이다. 그러니까 스님들도 함부로 출입을 하지 않는 문으로 속가의 사람들이 출입을 한다면 고지식한 법당 할머니가 그낭 보고 있을 턱이 없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런 말을 들으면 시작부터 재수(?)가 없을 가능성이 많으니까 아예 이 정도는 상식 중에 왕상식으로 알아두시라는 이야기다.

그런데 만약 옆 쪽에 문이 없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때는 정면의 옆문으로 출입을 하면 된다. 불교의 법이 어찌 생각하면 굉장히 딱딱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 내부에 흐르고 있는 이치는 모두 지극히 상식적이고 합리적이라는 생각을 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감로사의 조립식 법당처럼 문이라고 생긴 것은 정문 하나 뿐이라면 그냥 그 문으로 들어가면 되는 것이다. 이때는 어쩔 수가 없이 그대로 통하면 되는데, 문이 여러 개가 있는 데에도 불구하고 예의를 지키지 못하면 절법이 까다롭다고 탓하기 전에 자신의 무상식을 탓하는게 좋을 것이다.

2. 대웅전의 문턱을 넘을 적에

벗님은 그러한 기억이 없으신가 모르겠다. 어려서 문지방을 밟고 넘어가면 어르신들께서 야단을 치시던 경험 말이다. 이유야 어쨌거나 간에 일단 문지방을 밟는다는 것이 그렇게 금기시 되었다면 구태여 밟을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러니까 문지방을 밟지 말고 안으로 들어가시라는 이야기다. 그래서 안으로 들어선 다음에 그대로 본존불을 향해서 허리를 굽혀 예를 한 다음에 적당한 자리를 찾아서 깔고, 기본적으로 3번 절하면 된다.

3. 절하는 방법이 있다문서요...?

절을 하는데 가장 중요한 방법은 정성을 다해서 한다는 것이다. 그 나머지는 완전히 무시를 해도 좋다고 말하고 싶은 낭월이다. 원래 절에서 배울 적에는 오른 무릎이 어쩌고, 머리를 조아린 다음에는 두 손을 어쩌고... 하는 까다로운 방법을 익히느라고 고생 좀 했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가면서 이러한 것들은 그야말로 허례허식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냥 자신이 배운대로 하면 된다. 여기에서 배운대로라고 하는 것은 절에서 배운 것이 아니라, 가정에서 배운 것을 의미한다. 절은 어른에 대한 최상의 예의표시이다. 까다롭게 굴지 않아도 정성스럽게 하면 이쁘게 보이는 법이다.

요즘 낭월이는 언제 누구를 만나더라도 손바닥을 뒤집어서 머리 위로 들어 올리는 일은 하지 않는다. 잘났다고 그러는 것은 아니고, 가만히 생각을 해보면 이렇게 하는 동안에 너무 챙겨야 할 것이 많다는 것이 문제이다. 이 홈페이지의 주제가 무엇인가? 바로 '진정한 의미에서의 자유'가 아니던가. 그러니까 번거로운 것으로 인해서 정작 정성이 깃은 절을 하지 못한다면 이것은 너무 허망한 일이라고 생각이 되어서이다.

처음에는 원칙대로 배운대로 하다가 어느 스님을 만나서 그 동작의 부당성에 대해서 한바탕 연설을 들었다. 과연 그 말씀이 일리가 있었는데, 그 후로는 원칙(?)은 무시해 버리게 되었던 것이다. 어떻게 보면 절의 형식으로부터 자유로워진 것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결정적으로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티벳트 스님들의 오체투지를 보고 나서였다.

합장을 하고 엎드리는가 싶었더니 완전히 엎어져서 배를 깔고 두 손을 머리위로 쭈욱~ 뻣어 버리는 모습을 테레비로 보고 나서는 구태어 형식에 매인다는 것이 별 의미가 없음을 생각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구태여 원칙이라고 해서 배운 것을 버리라고 하지는 않는다. 각자 알아서 할 일인데 중요한 것은 바로 정성을 다해서 한다면 서서 하던지, 한 발을 들고 하던지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부처님의 가르침에도 어긋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원래 가르침에 절을 하는 방법은 없기 때문이다. 아니, 적어도 그 방법이 있다고 하더라도 지금의 그러한 모습은 아니었을 것은 확실하다고 본다.

4. 어디부터 절을 해야 할 것인가.

하긴... 워낙 대웅전에는 부처님만 계시는 것도 아니고 또 부처님이 주인인 것은 분명하지만, 한 분도 아니니 어디부터 해야 잘 했다고 소문이 나는 것은 고사하고 욕이라도 먹지 않을 것인가에 대해서도 고민을 한다면 역시 고민이 되는 장면이라고 하겠다. 그렇지만 부처님이 한 분이든, 열 분이든 일단 기본적인 절은 세 번이면 충분하다고 알고 있으면 된다. 세 번이 기본이다.

※ 세 번 해야 하는 이유

세 번 하는 것은 삼보에게 하는 절이다. 삼보라고 하는 것은 불법승(佛法僧)이라고 해서 부처님과 가르침과 스님들을 일러서 삼보라고 한다. 그래서 세 번 하라고 되어 있으므로 그렇게 하면 된다. 물론 한번 한다고 해서 잘 못 될 것은 없다. 다만 예의라고 하는 주제로 설명을 드리다 보니까 그렇게 말하게 되는 것이다.

일단 부처님(들)이 계신 곳을 상단이라고 하는데, 상단에 절을 세 번 했으면 다음은 중단에 해야 한다. 중단은 일명 신중단이라고도 하는데, 신중단은 어디냐면 부처님이 계신 곳의 좌우 벽면을 바라다보면 아마도 칼이라던지 창을 들고 있는 장군 차림의 사람들이 수두룩하게 모여있는 탱화(그림)가 있다. 그 곳을 향해서도 세 번 하면 된다. 그 분들은 부처님은 아니지만 그래도 법당을 지킨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그만한 대우를 받는 모양이다. 사회로 치면 대통령 경호실 쯤 되는 모양이다. 그러니까 한 번을 해도 되겠지만, 기왕이면 세 번 정도는 하는게 좋겠다고 본다. 그리고 불자들은 관습적으로 일단 세 번이다.

아마도 원칙적인 구조의 대웅전이라고 한다면 이 정도가 전부일 것이다. 어쩌면 영혼의 위패를 모셔 놓은 곳도 있을 수가 있겠으나 그런 곳에는 절을 할 필요가 없다. 그렇게 하고 나서는 서서히 감상을 하면 된다. 부처님이 잘 생기셨는지, 법당의 단청은 얼마나 고색창연한지 등등 자신의 안목대로 감상을 하고서 달 둘러 봤다고 생각이 되면 밖으로 나오면 되는데, 역시 출구 앞에 다다라서는 부처님을 향해서 반절(합장하고 허리를 굽힘) 정도는 하는게 좋다. 그리고 나가면 된다. 일단 대웅전 참배는 끝이 난 것이다.

5. 기타의 전각들은 어떻게 할까.

대웅전만 있는 절도 있고, 다른 전각이 많은 절도 있다. 그런 경우에는 천천히 돌아가면서 들리면 된다. 일단 특별히 법이 있는 것은 아니므로 대웅전 가까이에 있는 곳부터 이런 식으로 참배를 드리면 충분하다. 각 전각의 원리와 교리적인 이해가 필요한 경우에는 교리에 해당하는 곳으로 가면 설명이 되어 있다. 아직 없다면 앞으로 있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원하는 답변이 없을 경우에는 불교상담 게시판으로 질문을 해도 좋다.

다 둘러보고 난 다음에는 절을 떠나면 되는데, 사천왕문 부근에서 절을 둘러보면서 다시 반절 정도의 예를 표하면 더욱 아름답다. 이렇게 하면 일반적으로 참배객으로써는 충분히 예의를 갖췄다고 보면 되겠다.



큰스님을 친견하러 갔을 경우

각기 절에 찾아가는 목적이 다르겠지만, 그 중에는 큰 스님의 법문을 듣고 싶어서 찾아가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런 경우에는 또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를 몰라서 당황하게 될 가능성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런 장도 마련해 봤다. 일단 큰 스님을 뵈러 갔을 경우에라도 대웅전이 참배는 그대로 시행을 하고 나서 그 다음으로 목적한 스님을 찾아가면 된다. 만약 그 스님을 친밀하게 잘 알고 있다면 구태여 이러한 법이 필요 없을 것이다. 일단 전에 뵌 적은 없지만, 한번 찾아 뵙고 인생의 조언을 듣고 싶어서 찾아 갔을 경우를 생각해서 말씀드리려고 한다.

1. 책임자 스님을 찾는다.

절의 규모에 따라서 책임자 스님의 명칭이 각기 다를 수가 있다. 여기에서 큰 스님을 그 산에서 조실의 위치에 해당하는 분으로 가정을 하고 이야기를 해본다면 그 아래에는 주지스님이 있을 것이고, 또 주지 스님을 보필하는 삼직스님(총무, 교무, 재무)도 있다. 그리고 또 내부의 생활을 보필하는 원주스님도 있다. 그리고 손님들을 접대하는 지객스님도 있는데, 일단 무난한 명칭으로 찾는 것은 원주스님이다. 원주라고 하는 것은 그 절의 모든 허드렛일을 맡아서 하는 스님이다. 그 스님을 찾으면 밥도 얻어먹을 수가 있고, 차도 가능하면 마실 수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원주스님을 찾는 것이 기본이라고 하겠다.

2. 자신이 찾아온 목적을 말한다.

그래야 원주스님이 다른 담당자에게 연결을 시켜 주기 때문이다. 즉 조실스님을 찾으려고 한다면 아마도 시자스님(조실스님을 시봉하는 비서실장격)을 연결시켜 줄 것이다. 불공을 하겠다는 이야기를 했다면 노전스님(대웅전의 기도를 담당하는 스님)께 연결을 시켜 줄 것이다. 인터넷을 하기 위해서는 일단 넷스케이프나 익스플로러 등을 연결시켜야 하듯이 절에서는 무슨 일을 보던지 간에 원주스님을 통하는 것이 가장 무난하다.

원주스님을 만나면 밖에서라면 반절이면 충분하고, 방으로 안내 되었다면 큰 절을 한번 하는 것이 예의이다. 극성스러운 불자님은 구태여 절을 세 번 하겠다고 하는데, 이것도 실례라고 생각한다. 그리고서 자신의 목적을 말하면 된다. 나머지는 물으면 묻는 대로 공손하게 이야기하면 될 것이다. 그래서 일단 조실스님의 시자에게 연결이 된 것으로 치자.

3. 큰 스님 친견

친견이라고 말을 한다. 그렇게 안내가 되어서 원하는 조실스님을 뵙게 되었다면 이제는 스님께 예를 갖춰야 하겠다. 물론 여기에서는 특별한 말씀이 없다면 부처님께 하듯이 세 번 절하면 된다. 그리고 절하는 형식은 앞에서 대웅전 참배시에 배운대로 하면 그만이다. 다만 공손하게 해야 할 것은 예의 이전에 상식이므로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런데 만약 큰 스님께서 한번만 하라고 한다면 더 이상 고집을 부리지 말고 한번만 해야 한다. 떼를 쓸 필요가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스스로 허식을 싫어하는 담백한 스님이시라면 한번만 하라고 할 것이다. 그리고 깐깐하게(?) 따지기를 좋아하시는 스님이라면 가만 계실 것이다. 그러면 그냥 세 번 하면 그만이다. 이것은 상황에 따라서 그렇게 하면 된다.

그리고 자신이 궁금했던 내용이 있으면 그렇게 말씀 드리고 또 고승의 견해를 얻으 들으면 된다. 그리고 이야기를 다 들은 다음에는 자리에서 일어나면 되는데, 아마도 웬만큰 복이 있다면(?) 녹차 한잔 정도는 얻어 마실 가능성도 있다. 그러면 차가 향기롭다느니 하면서 비위를 좀 맞춰주는 것이 좋다. 인사치레일 망정 말이다. 물론 이미 차의 맛에 대해서 이해가 있는 벗님이라면 더 말할 필요도 없겠지만, 혹 입맛에 맞지 않아서 씁쓰레한 기분이 들더라도 향이 좋다는 정도의 예의면 충분하다. 물론 조실 스님께서는 차를 마시는 표정만으로도 맛을 알고 마시는지 그냥 건성으로 마시는지 파악을 한다. 그러니까 괜히 쓸데없는 일로 고민을 할 필요는 없다.

일어나서 나올 적에도 마찬가지로 큰 스님이 가만히 계시면 세 번 하고, 한번만 하라고 하면 한번 하면 된다. 그리고 할 필요 없다고 하면 또 그렇게 서서 반절만 해도 별 문제는 없다. 중요한 것은 너무 허식에 잡혀 있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면 된다. 다만 큰 스님에 따라서 나름대로 특이한 경우가 있다 가령 성철스님의 경우에는 미리 법당에서 3천 번의 절을 해야 비로소 맞아 주는 경우도 있으므로 그러한 경우는 극히 이례적이라고 보면 된다.

그리고 의논의 사례로써 얼마간의 보시(시주라고 해도 좋고, 즉 돈을 좀...)를 하고 싶은 생각이 들 수도 있다. 그럴 경우에는 그냥 큰 스님께 봉투를 드리기는 좀 그렇다고 생각이 되면 시자 스님에게 전해 드리면 된다. 그리고 그 시기는 방에서 밖으로 나와서가 좋다. 금액의 정도는 마음이 내키는 대로 하면 될 것이다. 부자라면 몇십 만원 내도 좋고, 몇 만원도 좋다. 금액이 적다고 생각되면 초값이라고 하고 드리고, 약간 여유가 있는 정도로 드린다면 약값이라고 해도 좋다. 뭐 아무려면 어떤가. 차비라고 해도 아무런 상관이 없고, 혹 소탈하신 스님이라면 곡차값이라고 해도 별 문제가 없다. 그렇지만, 적어도 조실 스님게 드리는 보시를 곡차값이라고 하려면 아마도 상당한 배짱이 필요할 것이다. 하하~

이 정도만 알아둔다면 너무 겁내지 말고, 아무리 고승이라고 해도 한번 찾아 뵙고 자신의 궁금증을 알아볼 마음을 낼 수도 있겠다고 본다. 이 정도로 생각 해봤다.



불전에 들어갈 때

불전에 들어가기 위해 계단을 올라서면 부처님을 향해 반 배로 한번 절을 한 후에 가운데 문이 아닌 오른쪽이나 왼쪽의 옆문으로 들어갑니다. 가운데 문은 어간문(御間門)이라고 하는데, 스님들께서 출입하시는 문입니다.

불전의 어간문 앞이나 불전 안에서 부처님 정면을 지날 때도 합장을 하고 부처님이 계신 곳을 향하여 반 배로 절을 한번 하거나 공손한 마음으로 허리를 굽히고서 지나갑니다.



발 아래를 살펴라

불전에 들어설 때는 신발은 신발장에 넣거나 신발장이 없으면 한쪽부터 가지런히 벗어둡니다. 照顧脚下(조고각하)라는 말이 있습니다. '발 아래를 비추고 살펴라'는 말입니다. 어지럽게 벗어둔 신발은 내가 지나간 흔적이 어지럽혀 진 것이며, 이로 인해 뒷사람의 마음을 어지럽게 합니다. 세상을 살아갈 때도 이와 같이 자신의 흔적을 깨끗이 하여야 합니다.

스님들이 공동으로 생활하시는 대중방(大衆房) 앞의 댓돌 위에는 흰 고무신이 가지런히 놓여져 있습니다. 그  누가 정돈하지 않아도 제각기 자신의 자리를 찾아서 반듯하게 벗어두니 모든 신발이 저절로 정돈되어집니다.

절에 가서 가지런히 벗어둔 신발을 보면 마음이 저절로 아름다워집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도 이처럼 모두가 제각기 자신의 자리를 지켜서 이치대로 살아간다면 훨씬 아름다워질 것입니다.  부처님 앞으로 우리가 들어가는 방향에서 왼쪽 문으로 들어갈 때에는 오른발이, 오른쪽 문의 경우 왼발이 먼저 들어갑니다. 이것은 들어서면서 부처님을 등지지 않기 위해서 입니다.

불전에 들어서면 뒤따라 들어오는 불자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한 걸음 옆으로 비껴 섭니다. 그리고 합장하여 반 배로 절을 한 번 합니다. 그리고 불단 앞까지 조용히 걸어가서 부처님께 다시 합장하여 반 배로 절을 한 번 한 다음 준비하여 온 공양물을 불단에 올립니다.



다른 사람의 수행을 방해하지 말아야

공양물을 올리는데도 예의에 맞는 방법이 있습니다.

이미 법회를 진행하고 있을 때는 앞으로 나가서 공양물을 올리지 않습니다. 스님이나 불자들의 수행을 방해하는 일이 되기 때문입니다. 자기 자리를 찾아서 선 채로 합장하여 반 배로 삼 배를 올리고 먼저 온 다른 초와 향이 이미 밝혀져 있으면 자신이 가져간 것은 불단(佛壇)의 한쪽에 가지런하게 둡니다. 자신의 촛불을 밝히기 위하여 먼저 밝혀져 있는 초를 끄는 일은 남의 공덕을 뺏는 일이 되기도 하고 재물의 낭비이기도 합니다. 불자들이 하는 것을 따라서 법회에 동참합니다.


향을 불자들마다 피워 올리면 오히려 향내가 너무 진하여 불전을 어지럽게 하며 부처님 앞을 지저분하게 하는 일이 됩니다. 촛불과 향은 누가 밝힌 것이든 하나만 올려져 있으면 모든 불자들의 공양을 대신하는 것이 됩니다. 불상이 모셔져 있는 불단은 바닥에서부터 아래쪽에 3단으로 이루어진 수미단(須彌壇)이 있고, 수미단 위에 다시 1단 혹은 2∼3단의 불단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우리들이 가져간 초와 향은 촛대가 놓여져 있는 단(壇)의 한쪽에 올립니다.

우리가 공양 올린 초와 향은 항상 그 자리에 둘 수는 없습니다. 소임자가 다시 초와 향을 모아두는 곳에 갖다 두게 됩니다. 불전에는 초와 향을 모아 두는 곳이 있습니다. 그래서 초와 향을 공양 올리는 방법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방법은 초와 향을 모아 두는 곳에 바로 올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다른 사람에게 수고를 끼치지 않아도 됩니다.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주지 못한다 하더라도 불편을 끼치지 않으려는 마음이 불교의 마음입니다. 내가 이익을 얻지 못한다 하더라도 다른 사람에게 손해를 끼치지는 않아야 할 것입니다.    



공양물을 올리는 바른 예법

공양물을 올릴 때는 불단 앞까지는 공양물이나 공양 그릇(供養器)을 오른쪽 어깨 위로 받쳐들고 갑니다. 부처님께 올릴 공양물에 콧김이 들어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불단 앞 가까이 가서는 두 손으로 공양물이나 공양 그릇의 아래쪽을 들고 머리 위로 받들어서 불단 앞으로 다가갑니다. 다가가서는 부처님을 향해 머리 위로 높이 받든 다음 내려서 적당한 자리에 올립니다.  

1) 초

촛불을 켜기 위해 성냥불을 켤 때는 부처님을 향하여 불꽃이 가지 않도록 비껴 서서 켜며, 끌 때에는 입으로 불지 않고 힘을 조금 주어 원(圓)을 그리면서 끕니다. 성냥개비는 불단 한쪽에 준비되어 있는 그릇에 담고, 성냥은 본래의 자리에 둡니다. 타버린 성냥개비를 촛대나 향로에 버리는 불자가 있는데 부처님 앞을 어지럽고 지저분하게 하는 일이 됩니다.

2) 향

향은 오른손가락으로 향의 중간 부분을 쥐고 왼손으로 오른손을 받치면서, 촛불로 불을 붙인 다음에 조금 힘을 주어 원(圓)을 그리면서 몇 번 돌려서 불을 끕니다. 그리고 향의 중간을 두 손의 손가락으로 감싸쥐고 머리 위로 받들어 올렸다가 내린 다음, 다시 오른손가락으로 향의 중간을 쥐고 왼손으로 오른손을 받치면서 향이 타다가 재가 향로 바깥에 떨어지지 않도록 향로의 가운데에 꽂습니다. 향로 주위에 향의 재가 떨어져 있는 모습은 고요한 마음과는 거리가 먼 것 같습니다.

3) 그 외의 공양물

차(茶)는 불자들이 개인적으로 공양 올리지는 않습니다. 새벽 예불(禮佛)과 사시(巳時) 예불 때 절에서 올립니다.

꽃과 과일은 묶음으로 불단에 올리지 말고 꽃은 꽃병에 담아서, 과일은 씻어서 공양을 올리는 그릇인 공양기(供養器)에 담아서 촛대가 놓여 있는 단(壇)이나 한 단(壇) 위에 공양 올립니다. 꽃병이나 공양기는 불전을 관리하는 소임자나 원주실, 공양간(供養間)에 여쭈어 보면 됩니다.

쌀은 봉지 채로 올려도 괜찮습니다만, 가능하면 쌀을 올리는 공양기에 담아서 올리는 것이 좋습니다.

돈을 공양 올릴 때는 미리 집에서 깨끗한 돈을 봉투에 넣어서 준비합니다. 부처님 앞에 와서야 지갑이나 주머니에서 꾸깃꾸깃 꺼내어서 올리는 모습은 공경하는 마음이 부족해 보이지 않습니까? 돈은 불단 위에 올려놓지 말고 복전함(福田函)에 넣습니다. 불단 위에 돈이 놓여 있는 것은 수행하는 마음을 어지럽게 합니다.  



보살님께도 정성을

불단에 삼 배를 올리는 것은 부처님과 보살님께 함께 절을 올리는 것이 됩니다. 그러나 정성을 더 기울이고 싶으면 먼저 올린 삼 배는 부처님께 올리는 절로 삼고 보살님께 다시 삼 배를 드릴수 있습니다. 이때는 부처님을 기준으로 왼쪽에 계신 보살님께 먼저 삼 배를 올리고 다음으로 오른쪽에 계신 보살님께 삼 배를 올립니다. 절에서 왼쪽과 오른쪽을 살필 때는 항상 부처님을 기준으로 살핍니다.
부처님과 보살을 모시고 있는 단(壇)을 상단(上壇)이라고 합니다.



악한 무리로부터 보호해 주는 신중단에도

신중(神衆)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수호하는 신의 무리입니다. 신 가운데서도 장군(將軍)이라 하여 신장(神將)이라고도 하고 성스러운 무리라 하여 성중(聖衆)혹은 *화엄성중(華嚴聖衆)이라고도 합니다.


불교의 신은 서양의 신과 같이 창조신이 아니며, 토속 신앙의 신과 같이 복을 주는 신이 아닙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수호하기 위하여 악한 기운을 물리치고 선한 기운을 도와주는 수호신입니다.


신중을 *탱화(幀畵)로 모시고 있는 단을 신중단(神衆壇)이라고 합니다. 불교의 신의 수(數)는 104위(位)입니다. 큰절의 신중탱화에는 104위가 모두 모셔져 있지만 작은 탱화에는 줄여서 대표적으로 몇 위만 모시고 있습니다.


신중단에도 삼 배를 올립니다. 그것은 '나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불자이니 지켜 주십시오'하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법회에서 반야심경을 독경(讀經)할 때도 '나는 반야심경을 독경하는 불자이니 잘 지켜 주십시오'하는 마음으로 신중단을 향해서 독경을 합니다.
신중단을 중단(中壇)이라고 합니다.

*화엄; 진리로 장엄 되어 있는 세계.
  *탱화; 벽에 걸려 있는 그림.



먼저 극락세계에 가신 영가들께

<사진설명> 영가단의 감로탱화(甘露幀畵)


영가(靈駕)는 우리와 함께 세상에 사시다가 먼저 돌아가신 분들입니다. 내가 모르는 분이라 하더라도 여러 생(生)을 살면서 알게 모르게 인연을 맺었던 분들이며, 먼저 극락세계에 가시어 아미타부처님과 함께 계시는 분들입니다.


영가들께도 삼 배를 올리는데 서서 합장하여 삼 배를 올려도 됩니다. 영가에게 절을 할 때 합장하지 않고 두 손을 포개는 방법으로 절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유교에서 절하는 방식입니다.
합장하는 방식의 절은 부처님께만 해당된다고 생각하는 불자들이 간혹 있는데 그것은 잘못 아시는 것입니다. 불교식의 절하는 법은 합장하여 절하는 것입니다. 절에서뿐만 아니라 어디서든지 세배를 올릴 때, 제사를 지낼 때, 어른들께 인사를 드릴 때도 합장하고 머리를 바닥에 닿게 하며 두 손을 머리 위로 받든다면 공경하는 마음이 얼마나 지극해지겠습니까?


영가를 모시고 있는 단을 하단(下壇)이라고 합니다.



다시 부처님께

각 단에 절을 마치면 부처님을 향해 서서 합장하여 다시 한번 반 배를 올립니다. 그리고 자리에 앉습니다.





부처님 앞에 앉거나 설 때

앉거나 설 때는 항상 절을 하면서 앉고 절을 하면서 일어섭니다.


앉을 때 머리를 바닥에 대고 정례를 올린 후 윗몸을 일으켜 허리를 바르게 세운 후, 무릎을 꿇은 상태로 앉아 있거나 두 발을 책상다리로 꼬아서 앉는 가부좌(跏趺坐)의 자세로 앉으면 됩니다.  



바르게 앉는 자세

일반적으로 앉는 자세는 왼쪽 발목을 오른쪽 발목 위로 올려서 오른쪽 허벅지 아래로 넣는 방식으로 앉습니다. 그리고 허리를 구부정하게 굽히고 앉아 있습니다. 앉는 자세를 보면 바른 불자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습니다.

바른 불자들은 허리를 쭉 펴고 결가부좌(結跏趺坐)나 반가부좌(半跏趺坐)로 앉습니다.
결가부좌는 오른쪽 발을 왼쪽 허벅지 위에 올려놓은 다음, 왼쪽 발을 오른쪽 허벅지 위에 올려놓아 서로 교차되도록 합니다. 저절로 두 무릎이 좌복(坐服) 바닥에 닿게 됩니다. 이렇게 앉으면 앉은 모양도 좋고 앉은 자세도 안정되며, 어느 정도의 긴장감이 생겨서 맑은 정신으로 오랫동안 앉아 있을 수 있습니다.


결가부좌가 어려운 사람은 반가부좌로 앉으면 됩니다. 반가부좌는 왼쪽 발을 오른쪽 허벅지 위에 올려놓고, 오른쪽 발의 발바닥은 왼쪽 허벅지 밑에 깊숙이 둡니다. 앞쪽에서 바라보았을 때 오른쪽 발가락이 보이지 않도록 안으로 당겨 넣습니다. 그러면 두 무릎이 바닥에 닿아서 안정감이 있게 됩니다.



허리를 쭉 펴고

결가부좌나 반가부좌의 자세로 앉은 뒤에는 두 손으로 무릎을 잡고 코와 입으로 온 몸의 숨을 모두 내쉬면서 몸을 앞으로 조금 숙이며 엉덩이를 뒤로 가볍게 밀어내고 다시 코로 숨을 천천히 들이쉬면서 허리를 바로 세우는 동작을 3-4번합니다. 이때 힘을 주지 말고 부드럽게 천천히 합니다.


다음에는 허리를 곧게 펴고 등골(척추 뼈)을 세워서 목과 머리가 수직이 되도록 합니다. 옆으로는 양쪽 귀와 양쪽 어깨가 수직이 되도록 하고, 앞으로는 코와 배꼽이 수직이 되도록 합니다.


윗몸을 머리끝에서부터 엉덩이까지 바르게 세운 상태에서 시계추처럼 윗몸을 왼쪽으로 기울이고 다시 오른 쪽으로 기울이는 동작을 3-4번합니다. 이때도 힘을 주지 말고 부드럽게 천천히 합니다.


윗몸을 앞으로 숙이고 바로 세우며, 다시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기울이는 동작은 몸을 기운을 풀어주면서 자세를 바르게 하고 몸의 균형을 바로 잡아줍니다.



마음을 활짝 열자

바깥 세상에 있는 모든 기운을 받아들이고, 안에 있는 모든 기운을 바깥 세상으로 보낼 수 있도록 마음을 활짝 엽니다.


좋은 것은 물론 밉고 싫어하는 것까지도 사랑하는 사람을 가슴에 안듯이, 잃어버린 외아들을 만난 듯이 모두 받아들이며, 나쁜 것은 물론 좋은 것까지도 주는 마음, 베푸는 마음으로 아낌없이 세상으로 보냅니다.



생각이 새어나가지 않도록

앉아서 마음을 쉬고 싶으면 허리를 쭉 펴고 앉은 자세에서 두 손을 주먹을 쥐거나 펴서 무릎 위에 올려놓습니다.

주먹을 쥘 때는 엄지손가락을 네 번째 손가락의 가장 아랫마디에 닿게 하고 주먹을 쥡니다. 이것을 금강권(金剛拳)이라 하는데, 몸의 고요한 기운을 밖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막아주는 손 모양입니다.



경전을 대하는 마음

바른 자세로 편안하게 앉아서 여러분이 가져온 경전(經典)을 볼 수도 있고 불단에 있는 경전을 볼 수도 있습니다. 불단의 왼쪽이나 오른쪽  끝에는 대개 경전이 쌓여 있습니다. 보신 후에는 제자리에 정돈하여 놓아둡니다.


경전은 삼보(三寶) 가운데 하나인 법보(法寶)입니다. 경전은 부처님께서 설법하신 가르침을 담아 놓은 책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삼장(三藏)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삼장은 부처님께서 설법하신 가르침을 모은 경(經), 부처님께서 정하신 수행자의 생활규범을 모은 율(律), 부처님의 제자들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해석한 글인 논(論)의 세 가지 입니다.


이에 더하여 경과 논을 해석한 글을 소(疏)라 하고 소를 다시 해석한 글을 초( )라고 합니다.
넓은 의미에서는 삼장을 모두 경전이라 하고 아울러, 부처님의 가르침이 담긴 책은 모두 경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서점에 가면 불교 책들이 많이 있습니다. 넓은 의미에서 모두 경전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부처님을 만난 듯이 소중하게 대할 줄 알아야 합니다.


책장을 넘길 때 손가락에 침을 묻히지 않으며, 먼지나 더러운 것이 묻어있을 경우 입으로 불어 털지 말고 깨끗한 수건으로 잘 닦아내며, 더러운 손으로 만지지 않습니다. 경전 위에 다른 책이나 물건을 올려놓지 말고 가능한 높고 깨끗한 곳에 보관합니다. 마치 부처님을 대하듯이 정성을 기울이기를 바랍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언제 어디서나 부처님의 가르침이 담긴 책을 지니고 다니면서 부지런히 읽고 깊이 음미하여 마음을 닦고 실천하는데 노력하는 것입니다.



기도를 하고 싶으면

좌선의 자세로 앉거나 무릎을 꿇고 앉아서 합장을 하고 마음을 모으고 정성을 기울여서 합니다. 불전에 있는 불자들이 함께 기도하고 있을 때는 소리를 내어서 같이 하면 되지만 각자 기도하고 있을 때는 소리를 내지 말고 마음으로 합니다.


'석가모니불' '아미타불' 등의 부처님이나 '관세음보살', '지장보살' 등의 보살의 이름을 부르면서, 염주가 있으면 오른손으로 염주를 한 알씩 굴리면서 정성을 모아 고요한 마음으로 기도합니다.



예불에 동참하는 법

새벽예불은 하루의 삶을 부처님과 함께 시작하는 시간입니다. 큰절에서는 오전 3시에 대개의 절은 4시에 도량석(道場釋)을 합니다. 도량석은  스님이 혼자서 천수경을 독경하며 도량을 구석구석 돌면서 도량의 어두움을 풀어 준다는 의미를 가집니다.


도량석을 들으면서 잠자리에서 일어나 세수를 하고 금당으로 갑니다. 금당에 가서 삼 배를 올린 후 가부좌의 자세로 허리를 펴고 앉아서 마음을 가다듬습니다. 범종 소리가 들리면 무릎을 꿇고 앉아 자신을 살핍니다. 스님이 들어와서 목탁을 울리면 오체투지를 한 후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이때까지는 말이나 소리를 내지 말며, 모든 생각도 부처님 생각만 합니다. 하루를 시작하면서 내는 첫 소리는 부처님을 찬탄하며 예배 올리는 소리인 '지심귀명례'입니다. 새벽예불과 저녁예불의 예불문은 '지심귀명례'부터 '자타일시 성불도'까지만 스님을 따라서 높이와 속도를 맞추어서 소리를 냅니다.


축원이나 발원문을 할 때는 소리는 따라 하지 말고 절만 하며, '관세음보살' 등의 정근기도를 할 때는 절을 하면서 소리도 따라서 하고, 반야심경도 따라서 합니다. 예불을 올린 후에는 자리에 앉아서 참선을 하거나 스님과 다른 불자들과 함께 기도를 하면 됩니다.


사시예불은 대개 오전 10시 30분에 시작합니다. 천수경의 '정구업진언'부터 '나무상주시방승'까지 따라서 하다가 중간에는 스님 혼자서 하고 다시 '지심정례공양'부터 '자타일시 성불도'까지 따라서 합니다.  


저녁예불은 낮 시간이 긴 3월부터 9월까지는 오후 7시에, 낮 시간이 짧은 10월부터 2월까지는 오후 6시에 시작합니다. 저녁예불은 하루의 삶을 마무리하는 시간입니다. 예불을 마친 후에는 천수경을 하면서 자신을 다시금 살핍니다.


산사의 새벽예불과 저녁예불에 참석하여 법고 소리를 시작으로 목어와 운판, 범종 소리를 들으면 마음으로부터 깊은 감동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법문을 들으면 세상이 새롭게 보인다

불전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는 법회(法會)를 하고 있으면 가능한 시간을 내어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는 법문(法門)을 듣기를 권합니다. 법문을 듣는 것을 청법(聽法)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법문을 하는 것을 설법(說法)이라고 합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믿고 배우는 불자는 돈독한 신심과 경건한 마음가짐으로 법회에 참석합니다. 정해진 법회 시간에 늦지 않게 참석하며, 앞자리부터 띄우지 말고 차례로 앉습니다. 먼저 온 불자는 좌복을 질서 있게 깔아놓는 등 법회 준비를 돕습니다. 불자들이 깨끗한 장소, 엄숙한 분위기에서 수행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보살피는 공덕은 무량한 것입니다.


법회 준비가 되었으면 자리에 앉아서 좌선을 하거나 다른 불자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조용히 경전을 읽으며 마음의 준비를 합니다. 법회를 시작할 때는 무릎을 꿇고 법회를 이끄는 인례자(引禮者)의 목탁이나 죽비 소리 등을 따라 절을 한 번 한 후에 일어섭니다. 일어선 상태에서는 항상 합장을 합니다. 의식을 진행한 후 다시 자리에 앉을 때에도 무릎을 꿇고 절을 한 번 한 후에 허리를 바르게 펴고 결가부좌나 반가부좌의 자세로 앉습니다.


만일 이미 법회를 하고 있으면 먼저 온 불자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앞으로 나가서 공양물을 올리거나 삼 배를 하지 않습니다. 다른 불자들의 수행에 방해를 주기 때문입니다. 선 채로 합장하고 반 배로 세 번 절을 한 후, 자리에 조용히 앉아서 법문을 듣습니다. 법회가 끝난 후에 삼 배를 하고 공양물을 올립니다.

*법문; 부처님의 가르침(法)을 들으면 지혜의 문(門)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法門이라고 합니다.



법문을 듣는 자세

설법을 하는 스님을 법사(法師)라고 합니다.  법사는 부처님을 대신하여 설법하시는 분이므로 법문을 듣기 전에 삼 배를 올립니다. 이를 청법삼배(請法三拜)라고 하는데, 부처님 당시부터 제자들이 부처님께 법문을 청할 때 세 번을 청한 것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요즘은 청법삼배를 하기 전에 먼저 청법가(請法歌)라는 노래를 부르지만, 전통적으로는 청법게(請法偈)를 세 번 되풀이하면서 삼배를 올렸습니다.

此經甚深意(차경심심의) 大衆心渴仰(대중심갈앙)
  이 가르침은 매우 깊은 뜻을 가지고 있어
  모든 사람들이 마음으로 목마르게 바라나이다.

唯願大法王(유원대법왕) 廣爲衆生說(광위중생설)
  오직 원하옵건대 대법왕이시여
  중생들을 위하여 널리 설하여주소서.

법회가 시작되고 설법을 들을 때에는 좌선의 자세로 바르게 앉습니다. 주위를 두리번거리거나 이야기를 나누지 않으며 손이나 발을 움직이며 마음을 산란하게 하지 앉습니다.


법을 듣는다는 것은 불교를 배우는데 첫걸음이 되는 일입니다. 잘 들어서 생각으로 삼고 생각을 바탕으로 닦아 행합니다. 이것이 聞思修(문사수)의 세 가지 지혜라 하였습니다.


설법 내용이 아는 것일지라도 가볍게 대하지 말고 가르침대로 실천하고 있는지를 살펴서 실천하고 있다면 더욱 노력할 것을 다짐하고 실천하지 못하고 있다면 아는 가르침을 실천하지 못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면서 마음을 가다듬어야 할 것입니다.


설법 내용이 어렵다하여 물러서지 말고 중생의 생각으로는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본래 부처인 내 마음은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마음을 열어서 담아둡니다. 그러다가 듣고 또 들으면 언젠가 깨침이 있을 것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책으로 대하거나 설법을 듣거나 머리로 생각하지 말고 마음에 담고 마음으로 느끼려고 해야 합니다. 많이 외우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마음을 비우고 닦는데 도움을 얻는 것이 중요합니다.  



법회를 마치면

법회를 마치면 자신이 앉은 좌복은 제자리에 바르게 정리하거나 자신이 앉은자리의 주위를 청소합니다.


그리고 이 좋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만날 수 있는 법회에 바쁜 시간이라도 틈을 내어 정기적으로 참석하여야겠다고 다짐합니다. 가족들과 주위의 사람들에게도 이와 같이 좋은 법회가 있다는 것을 널리 알려주어야겠다고 다짐합니다.



불전을 나올 때

이제 세상으로 내려가면 항상 부처님의 가르침을 믿고 배우며 실천하여 원만한 삶을 이루겠다는 다짐을 하면서 부처님께 삼 배를 올리고 불전을 나섭니다.


불전에서 마지막으로 나오는 사람은 항상 촛불이 꺼졌는가를 확인해야 합니다. 그러나, 항상 많은 불자들이 참배를 하는 불전에는 불을 끄지 않아도 됩니다. 불을 끌 때는 입으로 불어서 끄지 않고 손바람을 일으키거나 불단에 준비되어 있는 도구를 사용합니다.


그리고 문에서 다시 합장 반 배로 삼 배를 한 후에 나옵니다. 신발을 신을 때는 남의 신발을 밟는 일이 있어서는 안되며, 신발을 신는데 시간이 걸릴 경우에는 간단히 신은 후 옆으로 비껴 서서 바르게 신어야 뒷사람에게 불편을 주지 않게 됩니다.



탑과 부도에도 인사를 합니다

탑(塔)이나 부도(浮屠)에도 삼 배를 합니다.
탑은 부처님의 사리를 모신 곳이며, 부도는 스님의 사리를 모신 곳입니다. 그러므로 부처님과 스님을 대하듯이 공경하는 마음으로 인사를 합니다.


불전 바깥에 모셔져 있기 때문에 합장하여 반 배로 삼 배를 하거나 우슬착지(右膝着地)로 삼 배를 올립니다. 우슬착지는 예로부터 바깥에서 정례(頂禮)를 올리지 못할 때, 오른쪽 무릎을 땅에 닿게 하고 왼쪽 무릎은 직각으로 세워서 합장하여 고개를 숙이며 절하는 방법입니다. 탑이나 마애불(磨崖佛)에 부처님께 공양 올리는 보살상이나 스님상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우슬착지 대신에 서서 합장하고 반 배로 삼배를 올립니다.


탑돌이를 할 때는 탑을 오른쪽에 향하게 하고서 세 번 돌면 됩니다(우요삼잡;右繞三잡). 불전에 모셔진 부처님을 돌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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