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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벽공
작성일 2005/04/01
tag 윤회의 실상,전생과 윤회,
ㆍ조회: 37208    (스크랩)

윤회의 실체 - 불교에서 말하는 전생과 윤회의 세계 = 명상법길잡이, 참선


윤회의 실체 - 불교에서 말하는 전생과 윤회의 세계 - 마하수련원,-명상법 1대1명상지도,(정신불안극복,자기개발)
윤회의 실체 - 불교에서 말하는 전생과 윤회의 세계 - 인성교육


 인간의 삶은 무엇이며 어디에서 비롯되었는가. 나는 누구인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선은 무엇이며 악은 무엇인가 그 기준은? 우주 대자연과 각자의 흥망성쇠는 무엇 때문인가.
 이 도리를 규명하려고 인간은 수천 년간 각종 학설과 사상을 만들며 종교를 만들어 왔습니다. 또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실질적으로 증명하고 같이 공유하면서 원인과 결과에 접근하려고 합니다. 
 아직 증명할 수가 없지만, 과학자들은 가설을 세우기도 합니다.
 
 여러 사상 중에 지은 바대로 주고받는다는 윤회라는 사상이 있습니다. 
 윤회한다. 이 말은 불교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불교에서도 우주 실상을 설명할 때 윤회의 성질과 원인과 결과를 말하기는 하지만 그 자체가 우주실상을 설명하기 위한 일부라고 보면 될 것입니다.

 팔대장경에는 여러 곳에 전생과 윤회의 가르침이 등장하고 그 원리를 정말 소상하게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그런데 전생이야기나 윤회 이야기는 불교에서만 있는 것이 아니고 다른 종교의 가르침에도 있습니다. 
 불교에서처럼 구체적이고 소상하지는 못하지만. 공 사상만 해도 인도의 마하비라교나 다른 종교에서도 많이 인용되고 있는 말입니다. 
 
 옛 선지식들이 잘 사용하는 무심이니 무상이니 하는 말들도 인도, 특히 중국의 도교에서 근본으로 쓰는 용어가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말이 비슷하거나 똑같아도 도교에서 주장하는 무심과 불교에서 혹은 깨달은 불교의 선지식들이 주장하는 무심과는 지향하는 낙처가 별개로 모두 다릅니다.


 일단, 각 종교나 사상의 가르침의 요체를 살펴볼까요.
 불교의 가르침을 한마디로 정의를 한다면 중도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른 사상의 가르침은 윤회가 있다든지 아니면 없다든지, 세상이 공하다느니 또는 무상이라든지, 국집해서 주장을 하지만 부처님의 가르침은 윤회가 결정적으로 있다고 말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없다고 하지를 않는 것입니다. 

 이도 저도 아닌 것 같은 논리여서 언뜻 이해가 잘되지 않는 면이 없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말씀을 해야 하는 까닭이 있으니 잘 살펴야 할 것입니다. 
 인간의 감각 수준에서 보는 있다. 없다. 분별할 차원이 아니어서 그래요. 그것은 윤회의 본질이 있다고도 할 수가 없고 없다고도 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말이나 글로 표현을 할 때는 하는 수 없이 “있다.” 하기도 하고 “없다.” 하기도 했든 것입니다. 

 그러나 있어서 있다고 하는 것이 아니요, 없어서 없다고 하지도 않는 것입니다. 
 깨달음이 없는 자각하지 못한 사람들은 “있다. 하면 있는 줄만 알고, ”없다. “하면 없는 줄 알고 마는 것입니다.” 표현상으로 볼 때 한편으로는 있다고 해도 틀리지 않는 것이고 없다고 해도 틀리지 않는 것입니다. 

 불문에서는 깨달은 분을 선지식이라고 하는데요. 만약 어떤 선지식이 우주의 실상을 설명할 때, 앞에 듣고 있는 사람들이 윤회가 있고 인과응보가 있다고 마음으로 고집하고 있으면, 없다고 설명을 해서 그 집착을 놓게 하기도 합니다.
 그런가 하면, 세상은 선악도 없고 인과도 없으며 미래도 없다. 모든 것은 공 하다. 이렇게 고집을 하는 사람들을 깨우칠 때는 윤회도 있고 인과도 있다고 그 원리를 설명해 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선지식이 정말로 세상이 공한 경계를 보고 “세상은 공 하다.” 하고 자기도 모르게 집착을 일으키고 그렇게 설법을 하고 있다면 공에 떨어진 공견외도가 되는 것입니다. 
 
 청소년 학생은 여기서 과거의 학설에 연연하지 말고 다시 돌이켜서 길을 찾고 근본을 찾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고정관념으로 그게 맞는 거다. 단정해 버린다면 스스로 사고와 지혜의 성장이 막혀 버리니까요. 알겠습니까. 그럼 이어서 같이 더 살펴보기로 합시다.

 세상의 학설 중에 창조론과 진화론, 또는 숙명론, 공론, 무상론, 성악설, 성선설 등 여러 가지가 있지 않습니까. 불교는 어디에 속할까요? 결론적으로 불교는 어디에도 속하지를 않습니다. 

 세상은 꿈과 같아서 한 생각 지으면 찰라지간 이미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 생각들이 모이고 모양을 이루면 하나의 세계가 창조되는 것입니다. “중생들이 세상을 창조했다.” 하고 이야기를 한다 해도 크게 틀리지는 않겠지만, 그것도 일부 한 단면이지 결코 전체적인 온전한 학설은 아닙니다. 왜, 그럴까?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다음으로 진화론이 있습니다. 다윈이 구체적으로 진화론을 주장했습니다만, 하나의 개체가 분열과 합성을 통해서 다른 모습으로 변천해 가고 환경에 따라서 적응을 해 가면서 때로는 진화하기도 하고 도태되기도 한다는 것이 간단한 진화론의 바탕을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진화론도 부분의 설명이 될 수는 있지만 중중무진 수많은 차원의 세계를 다 설명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세상은 다 비어서 없다는 공론이나 무상론, 그리고 날 때부터 착한 근본을 타고났다는 성선설, 날 때부터 근본이 악하다는 성악설 등이 있지만, 결코 인간 생활의 일부분을 설명하려고 애쓴 결과물이지 전체적인 해석은 아닙니다. 

 그리고 숙명론이 있습니다. 전생으로부터 정해진 것은 바꿀 수가 없다든지, 인과응보나 업에 따라서 미래의 과보를 받는다고 생각하는 숙명론이 있습니다. 음양 오행론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사주명리학 등도 숙명론의 법주에 속한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자칫 불교에서 말하는 윤회와 방금 언급한 숙명론을 결부시켜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으나 불교의 가르침은 숙명론도 아닙니다. 전생을 이야기하고 결정된 과보를 이야기하니까, 비슷한 부분도 없지는 않으나 결코 숙명론은 아닙니다. 

 만약 숙명적으로 정해져 있다면 가난한 사람은 아무리 공덕을 짓고 노력을 해도 부자가 될 수가 없을 것이고 돌이나 바위는 영원히 돌이나 바위여야 할 것입니다. 또 악인은 아무리 참회를 하고 선행을 닦아도 악인을 면하지 못할 것이니 열심히 노력하고 공부를 하는 것이나, 수행 정진을 해도 아무 소용도 없을 것입니다. 
 특히 누군가 하늘에 있어서 마음대로 정해 놓았다면 이미 숙명적이기 때문에 더는 애를 쓰는 것은 소용이 없을 것이고 죄를 짓든 공덕을 짓든 그 책임은 하늘에 있을 것입니다. 

 비록 전생의 생각과 익힌 습기가 금생에 까지 와서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 하지만 결국 전생이라는 것도 생각 속의 일이고 자기가 스스로 지은 것이기 때문에 지금 이 순간 생각하고 하기에 따라서 다시 미래가 달라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노력도 필요하고 마음을 닦는 것도 필요한 것입니다. 
 
 전생이나 윤회를 잘못 알고 있으면 무기력 해 질 수도 있고 자기의 현재 잘못된 짓을 하면서, “전생의 빚을 갚는다거나 원수를 갚는다. 하고” 행위를 합리와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 알고 있는 자신에게 허물이 있는 것이지 가르침에 잘못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요즘 최면술이나 초 심리학의 연구가 활발해서 전생이야기가 시중에 회자하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문제도 있고 잘못 이해하는 사람들도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최면으로 전생을 본다 하는 것은 대부분이 엉터리라고 먼저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최면에 걸린 사람이 어떤 상념이 떠오르는 것은 시술자의 생각이 전달되거나 본인이 평소에 생각했든 숨어 있는 생각이 떠오르거나 주고받는 말속에 암시에 따라서 영상이 떠오르는 것입니다. 그것은 아주 흐린 것입니다. 
 
 맑고 맑은 그런 것하고는 거리가 먼 것입니다. 
 숙달되어서 좀 맑아졌다. 하더라도 잘못된 사념 때문에 만들어지는 상들이기 때문에 전생을 보았다, 하지만 대부분 엉터리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또 당신은 진시황제의 후신입니다. 양귀비의 후신입니다. 하고 마구잡이로 이야기하는 엉터리 영매도 많이 있습니다. 다 망상 속에 꿈을 꾸는 사람들입니다. 

 빙의란 것이 있습니다. 쉽게 말하자면 초자연적인 힘에 신 내림이 된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신 내림도 알고 보면 다 자기 잠재의식의 발로인 것입니다. 때로는 특수한 경우가 없지는 않지만, 근본 실상의 위치에서 보면 다 허망한 것입니다. 

 전생회귀라는 것도 때로는 인정할 만한 것이 없지는 않습니다. 예를 들자면 바둑을 잘 두는 프로가 있다면 그분은 자나 깨나 바둑만 생각하고 살 것입니다. 이런 사람이 어떤 계기로 전생회귀를 하면 오래된 대국도 기억을 하고 복기를 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것은 알 수 없고 떠오르지 않습니다. 
 
 오래 전문으로 익힌 기술을 한 십 년이나 그 이상을 사용하지 않아도 잊어버리지는 않습니다. 그것은 과거 생에서도 작용하는 것입니다. 
 전생으로부터 익히고 쌓인 습은 자기의 숙장에 기억이 되어 있다가 때를 만나면 발동을 하고 새로운 세계를 만들고 적응해 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전생을 기억했다 하지만 아무나 최면 등으로 전생을 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전생이라도 알고 보면 생각과 기억 속의 일이요 꿈속의 일이기 때문에 기억을 못 할 것은 아니지만, 최면 따위로 쉽게 모든 기억을 되살려지는 것은 아닙니다. 
 근간의 일은 그런대로 살릴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되살렸다 하더라도 일반 보통 사람의 기억이 다 정확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어제 일도 잘못 기억하는 일이 있는데 평범한 보통 사람의 기억이 정확할 수 없는 것이 더 맞을 것입니다. 

 부처님 말씀에 사람 몸 받기가 실로 어렵다고 하신 말씀이 경전에 많이 등장합니다. 이 우주는 끝이 없고 끝인가 하면 그것이 또 새로운 시작이며, 물질이 곧 정신으로 정신의 세계란 무한한 것입니다. 
 
 꿈속에서 끝을 찾을 수가 없듯이 중생계는 무량합니다. 끝을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물며 백천의 무수한 차원의 세계가 한량없고 그 속의 온갖 생명체의 움직임을 헤아릴 수가 없는 것은 당연하다 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의 세포 속에 또 우주가 있고 그 하나의 우주 속에 또 우주가 전개되듯이 중생계 또한 그러한 것입니다. 

 천상으로부터 지옥까지 그러한 세계가 하나의 육도세계를 이루고, 그 하나의 육도세계가 다시 헤아릴 수 없이 거듭 중첩되면서 또 소천세계를 이루고, 더욱 더하여 중천세계를 이루고, 더욱 겹치고 더하여 대천세계를 이루니, 무량무수의 삼천대천세계의 모든, 보이고 들리는 일체의 모습들을 다 중생들이라고 이름하는 것입니다. 
 굳이 나눈다면 움직임이 활발한 것은 유정이라 하고 움직임이 나무나 목석과 같이 약한 것은 무정이라고 할 뿐입니다. 깨닫지 못한 것은 다 중생입니다. 

 불교에서는 신으로부터 지옥 중생들까지 다 중생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가히 중생의 경계는 한량이 없는 것입니다. 

 간혹 사람들이 "현재 세계인구가 70억으로 불어나고 있는데 그 사람들은 도대체 전생 어디에서 온 것이냐? 하고 그것만 보아도 윤회는 없는 것이다." 하고 단정을 짓기도 합니다만. 중생계는 인간만 그리고 지구만 존재하는 게 아니지요.

 또 어떤 학자는 “부처님은 힌두교의 제자로 힌두교의 윤회설을 빌려왔다. 하고” 말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인도의 카스트 제도가 윤회설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고 간혹 학자들이 말하고 있는 듯한데, 윤회설이라도 힌두교의 윤회설과 불교의 윤회설은 근본으로 다른 것입니다. 
 힌두교의 윤회설은 숙명적이면서도 창조론 적입니다. 범천이 인간을 계급 차등을 두어서 창조했다, 또는 어느 종파는 자재천이 인간을 창조했다 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곧 창조설과 숙명론의 합작인 것입니다. 결코, 불교에서 말하는 윤회 사상과는 처음부터 틀린 것입니다. 

 부처님이나 역대 고승들은 힌두교의 교의와 윤회설의 허구를 철저히 파악하고 논파했는데 그중 하나가 힌두교에서 주장하는 사성 계급입니다. 
 사성 계급이란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바라문, 왕족, 서민, 천민, 이렇게 귀천이 정해진다는 카스트 제도의 잘못을 지적했든 것입니다. 
 힌두교의 윤회설은 각자의 행위와 물리적인 원리에 의해 윤회를 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의 범천이 정해준 대로 태어나고 윤회를 하는 숙명적인 성질을 띠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대충 각 사상의 주장 핵심을 살펴보았는데요. 좀 더 여러분과 진화, 윤회, 변천의 과정을 과학적으로 합리적으로 생각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하나의 바위산이 가루가 되어서 흙이 되려면 수천, 수만 년의 세월이 걸리듯이 하나의 박테리아가 수많은 분열과 합성을 거쳐서 다른 생물로 탈바꿈하려면 얼마나 많은 세월이 걸리겠습니까? 
 어떤 사람이 특별한 인연으로 인간 몸을 잠시 버리고 축생의 몸을 받는다 하면, 그 인연이 끝났을 때 다시 인간 몸을 받을 수 있겠지만, 만약 점점 복이 다하고 습관이 달라져서 인간 몸을 거듭 받을 때마다 모습이 흉해지고 복이나 정신이 인간의 몸을 받을 수가 없는 단계가 되면 결국 인간의 몸을 잃고 다른 몸을 받을 것입니다. 
 
 (이 과정을 우리 주변의 물질 변천 과정으로 상상해 보아도 되겠습니다. 여러 부품이 모여서 하나의 사용품이 되고 다른 사용품들과 더불어 같이 실내를 장식하고 사용되다가 성능이 떨어지고 치워져 가는 과정으로 살펴보세요.)

 이때는 이미 생각 자체가 인간성을 상실했기 때문에 다시 돌이켜서 인간의 몸을 회복한다는 것이 너무 어렵고, 인간의 세월로는 알 수가 없으므로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한번 인간 몸을 잃고 다른 몸을 받으면, 다시 인간 몸을 만나기가 지극히 어렵다고 했든 것입니다. 
 
 우리의 몸 세포 속에는 미생물뿐만 아니라 냉혈 동물들의 구조까지 다 갖추고 있습니다. 이 몸에 천상과 지옥이 공존하고 생각과 습관 속에 천상과 지옥이 남아 있습니다. 
 다만 금생에 인연 따라서 어떤 성품과 모양이 밖으로 드러나서 활동하느냐에 따라서 성스러운 모습이 되기도 하고 천박한 모습이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처음 태에 들어서 모습이 생길 때는 동물이나 사람이나 고기나 비슷한 것을 보면 어느 정도 알 수가 있을 것입니다. 

 나는 지금 여기서 부처님이 말씀하신 것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해석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나의 말에도 걸리지 말고 고정관념에 매이지 말고 실질적인 인생을 규명하는 자세로 읽고 분석하셔야 합니다. 여러분은 내일의 주인공이고 삼라만상의 운명을 조종하는 우주 왕이기 때문입니다.
 
 동물은 동물대로 행위에 의한 습관이 있고 익히고 쌓은 생각이 있는 것입니다. 그 몸을 받은 후에는 그 속에 갇혀 한 생을 보내는 것입니다. 그 운명이 끝나면 또 다른 생각이 하나의 몸을 만들고 그 생각과 몸으로 다른 세상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라고 시키지도 않지만 스스로 생각과 익힌 습성(습관)으로 그렇게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한 사람의 술꾼이 있다고 합시다. 
 한 삼 년 정도 술을 함부로 마시고 취하여, 세상을 잊어버리려고 하면 알코올에 중독됩니다. 그러면 그 사람의 신경계는 변해서 때로는 밥을 먹지 않고 술만 먹어도 살 수 있는 이상한 몸으로 변화되기도 합니다.
  그러면 거기에 따른 몸의 변화와 그 나름대로 인생과 주변 경의 변화가 자연히 나타나기 마련입니다. 그것이 알기 쉬운 운명이고 인과응보입니다. 
 곧 반복되는 깊은 잠재된 의식과 밖으로 드러난 반복되는 습성이 미래의 인연을 만들고, 다른 변수 요소와 모이고 흩어지면서 다르게 변해 가는 과정을 연출하는 것입니다.

 인과응보란 자연 발생으로 순리적으로 오는 현상을 말하는 것입니다. 다가오는 시간과 순서는 일정하지 않은 것입니다. 곧장 다가오기도 하고 금생이 아닌 내생에 다가오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연과 더불어 같이 겪기도 하고 주변의 가까운 인연들과 같이 얽혀서 겪기도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연과 ‘나’가 둘이 아니며 수많은 개체가 하나의 인연으로 더불어 한 몸을 이루며, 그렇게 시공을 만들고, 사건을 만들면서, 변화를 거듭 일으키지 않습니까. 
  다시 더 큰 덩어리끼리 또 하나의 세계를 형성하고, 하나가 되어 숨 쉬고, 변하고, 윤회합니다. 생각과 행위가 교감합니다. 
 
 인과가 발동할 때는 움직일 인연을 만나야 발동을 합니다. 예를 들자면 하나의 씨앗이 가만히 있다가 습기를 접하면 싹이 트듯이 때가 되면 다가오는 것입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똑같은 모습으로 다가오지는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로 금생에 발동을 하더라도 그 원인과 결과를 잘 모르고 인과가 없는 것으로 착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일정한 원리가 있습니다. 
 
 흔히 알고 있듯이 악한 행위를 하면 벌이 내리고 선한 행위를 하면 복이 생기는 그런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간단히 정리해서 그렇게 설명을 할 수도 있지만, 인과응보는 세상 모든 곳에 공평하게 작동하고 물리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응당 다가오는 현상일 뿐입니다. 
 
 이것이 과거로부터 현재 미래까지 연속되면서 윤회를 하는 것입니다. 물질이나 정신은 하나입니다. 그러나 느낌상 간발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몸과 정신을 때로는 나누어서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위 도리를 소상하게 밝게 알아야 각자의 지금 행위가 미래에 자신과 타인에게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 알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나쁜 운명 좋아할 사람이 없겠지요. 어느 누가 강제적으로 보내는 것도 아닌데 지옥에 갈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운전하는 사람 중에 자동차 사고를 당하는 것을 원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잠깐 졸음이 온다든지 전날의 과음으로 피곤했든지 다른 원인으로 마음이 안정이 안 되고 불안하다면 사고가 날 확률이 더 높아지지 않겠어요. 다른 차를 운전하는 상대가 그래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지난 시공의 묘한 인연으로 다시 얽혀서 사고가 날 수도 있습니다. 

 부처님이나 옛 선지식들이 한결같이 가르침을 주십니다. “우주 근본 실상은 정해진 모양도 없고 늘고 줄지도 않으며 나고 죽지도 않는 불생불멸의 본래 그대로라고.” 

 그토록 시간도 공간도 없지만 깨닫지 못하면 스스로 있는 듯한 몸을 느끼게 되고, 과거 현재 미래가 한 생각이지만 그 속에 돌고 돌면서 윤회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를 일러 "묘하다." 하고 탄식을 하는 것이며, '없다.' 하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깊은 근본 처에서 살핀다면 일체가 환이요. 무상이라, 이 몸도 정신도 사상도 천상도 지옥도 윤회도 다 허망하고 근본 성품은 예로부터 변함이 없지만, 무명으로 인해서 윤회하며, 행 불행이 반복되고 끝없이 주고받으므로 그 자체가 고통 바다인 까닭에, 부처님은 본래 성품을 깨달아서 해탈하도록 가르침을 주시는 것입니다. 
 
 진화, 윤회, 과학, 흥망성쇠, 천상과 지옥, 모든 과보는 인연의 소치이니 그 인연은 깊은 아뢰야식 곧 깊은 잠재된 씨앗을 바탕으로 깊은 잠재의식 고유특성이 본능의 주인이 되며, 그 오른팔 왼팔인 활동 의식 곧, 반복되는 습성이 반복되면서 중독되고 중독은 업이 되어 땅이 굳어지므로, 미래의 환경과 몸 결과를 이루게 됩니다. 이를 일러서 지은 바대로 받는 인과응보다 말하는 것입니다. 

 깊은 관념은 본래 ‘공’ 하므로 원래대로 완전하게 걸림 없고 비워지면 해탈이라 하며 윤회에 자유로워지는 것이며, 반복되는 습성이 화합행으로 귀결되면 공덕이 되고 복을 이루어서 화평하고 좋은 세상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도리를 잘 궁구하여 믿어지고 밝아지면 열심히 실천하여 지혜롭고 밝은 세상을 사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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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의 T. 070-8285-6685. 사업자 120-27-00295. 대표 김연호/ , 개원. 2001년 01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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